이미지 크게보기 14일 열릴 세네갈과의 평가전을 위해 귀국한 박주영, 이청용, 박지성(왼쪽부터)이 8일 파주NFC에서 훈련을 마친 뒤 선전을 다짐하며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파주 = 김선규기자 ufokim@munhwa.com

외국 프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해외파’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한 달여 만에 다시 모였다. 그들 가운데서도 세계 축구 최고의 무대로 불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프랑스 리그1(1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지성(28·맨체스타 유나이티드)과 박주영(24·AS 모나코)이 지금은 한국 축구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지난달부터는 이청용(21)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 볼턴 원더러스에 입단하자마자 주전으로 풀 타임 출장하고 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을 맡고 있는 허정무 감독도 자연스럽게 이들을 대표팀의 주축으로 삼아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을 준비하고 있다.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세네갈과의 친선경기를 위해 8일 파주NFC(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 다시 모인 ‘해외파 3인방’을 허 감독과 함께 만났다. 허 감독도 선수 시절 네덜란드 프로리그에서 활동한 ‘원조 해외파’로 해외에서 뛰고 있는 애제자들에게 각별히 얘기해 줄 게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함께 자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때마침 홍명보 감독이 팀을 이끌고 출전 중인 200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월드컵이 화제가 돼 버렸다.

먼저 박지성은 “그쪽(영국)에서 중계를 하지 않아 청소년대표팀의 경기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결과를 보면 매우 훌륭한 경기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아시아 무대가 아닌 세계 대회에서 어린 선수들이 능력을 보여줬다. 장차 대표팀을 이끌 선수들이기에 한국 축구로서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며 후배들의 선전에 박수를 보냈다.

직전 U-20 월드컵인 2007년 캐나다 대회(조별리그 통과 실패)에 참가했던 이청용은 “8강까지 오르다니 대단하다. 좋은 경기력으로 더 좋은 성적을 내고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청용은 또 “최소 4강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선수들 모두 후회 없는 대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2003년과 2005년 U-20 월드컵에 참가했던 박주영은 “정말 큰일을 해냈다. 같은 축구선수로서 매우 자랑스럽다”며 “결승까지 올라가 꼭 우승했으면 좋겠다. 한국 축구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후배들의 활약에 함께 기뻐했다.

U-20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홍 감독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허 감독은 “지금 U-20 대표팀에 스타가 없다고 하지만 스타 선수들도 처음에는 다 무명이었다. 박지성도 그랬다”면서 “무명선수에게 스타의 길을 열어주는 안목 등 홍 감독은 모든 면에서 칭찬받을 만하다”며 후배 감독에게 힘을 실어줬다. 박지성도 “팀 장악 능력이나 의사소통 등 대표팀 주장 때의 모습을 감독으로서도 보여주는 것 같다. 이제 한국도 세계적인 지도자를 배출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화제는 다시 대표팀 본연의 임무(?)로 돌아왔다. 허 감독은 14일 있을 세네갈과의 평가전에 대해 “아프리카 팀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지금은 월드컵 본선에서 맞붙게 될 유럽, 남미, 아프리카 팀을 상대로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알아가는 데 초첨이 맞춰져 있다. 이들과 싸워 이기려면 전체적으로 팀이 안정돼야 한다. 조직력도 훨씬 좋아져야 하고, 개인 기술도 더 발전해야 한다”며 이 경기가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해외파 3인방’도 세네갈과의 경기에 큰 기대를 드러냈다.

박주영은 “아프리카 팀을 상대로 우리가 어떻게 경기를 풀어가야 할지 점검할 좋은 기회다. 아프리카 선수들의 장점을 파악하고 준비하면 재미있는 경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대륙 출신 선수들이 많은 프랑스 리그에서 뛰는 박주영은 “프랑스 리그에 세네갈 선수들이 꽤 있다. 몇몇 선수는 이번 평가전에 참가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세네갈 선수들은 유럽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 등 모든 것을 갖췄다”고 높이 평가했다. 박지성도 “아프리카 선수들의 특징과 경기 운영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며 이번 평가전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청용은 “힘들겠지만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국내에서 하는 올해 마지막 경기이니만큼 팬들과 즐길 수 있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의 대화는 최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이청용에 대한 얘기로 모아졌다.

이청용은 연일 희소식을 전하고 있다. 최근 소속 팀 경기에서 도움과 골을 번갈아 기록하며 3경기에서 연속 공격포인트를 올린 그는 현지 언론으로부터 ‘기술을 갖춘 박지성, 노력하는 선수’와 함께 ‘영리한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로무대(K-리그)에 뛰어들어 학업을 접었던 이청용은 최근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볼턴 현지의 랭귀지 스쿨이다. 이청용은 “언어 습득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 랭귀지 스쿨에 다닌다. 숙제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랭귀지 스쿨에 함께 다니는 친구들은 거의 중동 국가 사람들이라서 영국이나 한국 사람이 별로 없다. 하지만 앞으로 함께 생활하게 될 매니저가 현지에서 20년 넘게 살았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영국에서의 생활을 소개했다. 그는 “아직까지는 엄마가 한국에서처럼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등으로 입맛을 돋워줘 문제가 없다. 또 영국 음식에 특별히 거부반응도 없다”며 해외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선배들과 감독에게 설명했다. 이어 ‘국내에서보다 연봉이 많이 높아졌는데 어떻게 관리하느냐’고 묻자 그는 “엄마한테 돈을 다 맡긴다”며 웃었다.

이청용이 랭귀지 스쿨에 다니고 있다는 얘기를 하자 먼저 해외 무대를 경험한 박지성과 박주영이 이구동성으로 ‘소통’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박지성은 “앞으로 해외 진출을 꿈꾸는 선수들은 영어만큼은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리그 적응의 첫 번째가 동료들과의 스킨십이고 대화”라며 이청용을 격려했다.

얘기는 다시 최근 소속팀 경기에서 골을 넣은 박주영으로 옮아갔다. 박주영의 얘기는 지난해 허 감독과 프랑스에서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시작됐다.

지난해 9월 AS 모나코와 파리 생제르맹전이 열린 루이II세 스타디움을 찾은 허 감독은 경기를 마친 후 박주영과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고 한다. 당시 박주영은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골욕심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한동안 대표팀에서 제외돼 자신감도 떨어져 있던 때다. 허 감독은 제자가 아닌 후배에게 하듯이 PSV 에인트호벤에 진출했던 1980년 7월을 떠올리며 경험담을 얘기했다고 한다.

허 감독은 그때 “난 3~4개월간 출전기회를 얻지 못하다 위트레흐트의 판 하네겜을 이기고 나서 주전을 꿰찰 수 있었다”며 “피하면 야유를 받는다. 박지성도 초창기 홈팬들로부터 외면받았다. 그걸 이겨내야 진짜 성공”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투쟁하고 보다 과감하게 공격하라고 주문했던 것. 그는 “네가 가진 기술이라면 충분히 통하니까 두려워 말고 시도해 보라”고 충고했다. “동료들이 훈련 때 내가 살살하니까 ‘융! 진생(인삼) 안 먹었냐’고 핀잔을 주더라”며 훈련 때 강한 모습을 보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박주영은 지난 5일 올랭피크 마르세유 원정에서 결승골이자 시즌 2호 골까지 터트리는 등 올 시즌 2골 2도움으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고 있다. 소속 팀을 리그 4위까지 끌어올린 박주영은 프랑스 축구 전문지 레퀴프가 선정하는 베스트11에 올랐고, 올 시즌 7경기 평균 평점 6.67점으로 르 샹피오나를 통틀어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문전으로 파고드는 몸짓과 상대 수비수를 속이는 기술에서 자신감이 묻어난다. 미드필드라인의 알론소-네네-쿠타되르와 하나 된 움직임이 눈에 띈다. 몸싸움을 꺼리지 않고 공중볼 경쟁도 곧잘 이겨내고 있다.

박주영은 허정무호 출범 후 8골을 뽑아냈다. 월드컵 7회 연속 진출을 확정 짓는 결승골(6월 UAE전)을 뽑았고, 10년 남미 징크스를 깬 결승골(8월 파라과이전)이 그의 발끝에서 터졌다. 박주영은 “월드컵 본선에서 아프리카 팀을 만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세네갈과 평가전에서 골을 넣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체육부장 kj5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