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2년에 몇개월씩 독일에 머물며 글을 쓰는 배수아씨는 이번에도 소설 출간 직전 독일로 떠나 올해 말까지 베를린에 머물며 글을 쓸 예정이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기존의 전통적인 소설쓰기를 거부하며 자신만의 소설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 소설가 배수아(44)씨가 신작 장편소설 ‘북쪽 거실’(문학과지성사)을 내놨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친절한 소설은 아니다. 꿈과 현실, 과거·현재·미래, 나와 너, 삶과 죽음 등 우리들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경계들이 무너져, 현실은 꿈과 엇갈리고, 시간은 뒤섞이고, 서사는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같은 모호함 속에서도 분명하게 삶과 인간에 대한 사유, 불가능한 자유에 대한 추구, 소통되지 않는 언어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고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언사들도 내뱉고 있다. 집중해 읽어도 자칫 중간에서 길을 잃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모호한 소설 세계 안에서 길을 찾아 걸어가며 작가의 목소리를 읽어내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일 수 있다.

이미지와 상징이 넘치는 소설의 주인공은 문학텍스트를 가지고 오디오 북을 만드는 목소리 배우 수니. 그녀는 스스로 ‘수용소’에 들어왔다가 8년 만에 나온다. 수니는 수용소에 영원히 머물기를 원하지만 수용소 입소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현실 세계와 대립되는 수용소 안에서 또 다른 삶을 찾으려 했던 수니는 무기력하게 수용소를 나온 뒤 8년 전에 동거하던 남자친구 희태를 찾아간다.

희태는 신문기자 출신으로 수니가 떠난 뒤 외국으로 이주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비사회적이며 현실에 무력한 인물이다. 8년간 수니에게 편지를 보내온 희태는 재회를 기뻐하지만 며칠 뒤 수니는 실종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 같은 희태와 수니 주변에 알코올 의존자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출한 뒤 실버타운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순이, 페미니스트였다가 독일로 건너가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희태의 사촌누이 강은희 등이 등장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현실 사회로부터 자발적으로 벗어나 무기력한 은둔을 택하거나 말이 통하지 않는 고통스러운 이방인의 삶을 살아간다. 이는 이들이 경계 밖 세상의 고통을 견딜 만큼 둔감하거나 튼튼해서가 아니라 경계 안 현실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여리고 예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희태는 감각이 너무 섬세해 안경을 쓰지 않고는 상대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의 경계 밖 삶 역시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이다. 바깥으로 나가도 “거기에는 또 다른 벽이 있고, 그 너머로 나가도 어딘가 또 다른 벽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끝없이 세상 밖으로의 탈주를 시도하는 이들은 결국 “진실은 아무 데도 존재할 수 없다”고, “인생은 지루하고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그토록 원하는 자유는 개념 자체가 오류라고 이야기한다. 또 작가는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삶에 대해 “삶이 하나의 교리라는 것을, 국가는 하나의 군대라는 것과 민족은 종교라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며 “한국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 한국 여인들의 처지와 사고도 자연스럽게 변화하리라고 기대했었지만 한국 여성들은 절대 혁명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편 평론가 김형중씨는 이 소설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꿈이라고 풀이했다. 뒤섞인 시간과 공간, 인과관계 없이 흐르는 이야기,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사람이 되는 상황, 불가능한 사건들과 만남들이 바로 우리들이 꾸는 꿈과 같다는 설명이다. 한편의 거대한 꿈으로서의 소설. 그렇다면 ‘북쪽 거실’은 매우 고통스럽고 고단한 꿈이다.

최현미기자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