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여행을 떠난다. 허름한 배낭에 MP3와 소설책 한 권만을 들고, 눈먼 맹인 안내견 와조와 함께. 슬프고 고독한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올해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소설가 장은진(33)씨의 소설 ‘아무도 편지 하지 않다’(문학동네)는 주인공의 이같은 쓸쓸한 여행으로 시작된다.

발길 닿는 대로, 버스와 기차가 멈추는 대로 걷고, 밤이면 모텔과 여관을 전전하는 주인공은 3년 동안 길 위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친구를 밀어서 식물인간으로 만든 아이 239, 첫사랑을 잊지 못해 기차에 머무는 사람 109, 자살을 결심한 사람 32…. 외로운 주인공 못지않게 아프고 슬픈 사람들이다. 그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가장 간단하고, 기억하기 쉽고, 무엇보다 무한대로 확장가능한 번호를 붙여준다.

그런데 그가 여행 첫날부터 모텔에 여장을 풀고 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그날 하루의 이야기, 여행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편지인 것이다. 그는 편지를 길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편지 이야기에 맞을 것 같은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잘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 그래서 받은 편지를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 줄 것 같은 사람에게 보낸다.

소설은 로드무비 같은 주인공의 여행기와 길 위에서 보내는 아프고 고독한 사람을 위로하는 편지 이야기 속에 조금씩 조금씩 그를 둘러싼 개인사의 비밀들을 드러낸다. 말을 심하게 더듬어 사람들과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피해 우편배달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발명가 아버지, 학생들에게 악명 높은 수학 선생이었던 어머니, 전교 1등 모범생인 형, 쇼핑중독에 걸린 여동생까지.

주인공에게 편지는 일기와 같은 것이다. 다만 그의 일기는 자기만을 위한 일기가 아니라,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편지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는 편지를 통해 자신에게도 하루가 존재했다는 걸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편지 말미에 언제나 자신에게 답장을 보내 달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편지를 받을 사람이 있고, 또 답장을 보내줄 사람이 있다면, 생은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단 한 사람뿐이라 하더라도”(p277)라며. 그래서 그는 “누군가에게서 단 한 통의 편지가 오면 이 여행을 중단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원래 소설 제목을 먼저 생각해 놓고, 작품을 쓰는 습관이 있다는 작가는 ‘아무도 편지 하지 않다’ 역시 오래 전에 제목을 먼저 생각해 놓았던 작품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편지를 소재로 글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는 “편지는 소통이다. 사람들은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결국 답장을 받기 위해 편지를 쓰는 것 아니겠느냐”며 “상처받은 주인공이 여행을 떠난 것 그리고 여행길에서 끊임없이 편지를 쓰는 것은 모두 누군가를 찾는 과정이다”고 설명한다. 이어 작가는 “인간은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한 존재이며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를 받는 것도 위로를 받는 것도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최현미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