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경남 함양 ‘아름지기 함양한옥’에서 23일 사진작가 배병우씨가 함양한옥을 소재로 한 신작들을 설명하고 있다.

9세기 말 통일신라 진성여왕 시대에 최치원이 함양태수 시절 수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상림(上林)이 지금도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경남 함양. 150여년 된 함양의 전통한옥에서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배병우(59)씨의 함양 사진전이 24일 개막했다.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179번지, 정선 전씨의 고택을 개·보수한 한옥체험관 ‘아름지기 함양한옥’에서 열리는 이색전시를 통해 배씨는 소나무 및 함양한옥과 마을을 촬영한 신작 14점을 선보인다. 비영리단체 ‘아름지기’를 후원하는 의미에서 배씨는 전시용으로 매화, 작약, 들풀이 핀 함양한옥의 마당 사진 및 마을 풍경 사진 14점을 내놨고, 지속적으로 함양의 소나무 사진을 제공할 뜻을 밝혔다.

23일 함양 전시장을 찾은 배씨는 “20여년 동안 소나무를 촬영했던 경주 남산에선 카메라를 들고 ‘배병우 사진 따라잡기’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작업이 힘들어졌다”며 “경주에서 벗어나 양산 통도사를 거쳐 가야산으로 소나무를 찾아다니다 가까워진 곳이 바로 함양”이라고 밝혔다. “카메라 피사체로서 해송은 너무 까맣고 품위가 없어 보이고, 계곡의 금강송은 너무 늘씬해서 사진 분위기가 덜해요. 근육기 있고 너무 휜 것도 아니면서 움직임이 있는 소나무를 선호합니다.”

전통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아름지기가 함양한옥을 한옥체험관으로 일반에 공개한 2005년 이후 그는 연중 수차례 소나무 골조의 숙소에 머물면서 소나무뿐 아니라 함양마을을 카메라에 담아 왔다. 삼성미술관 리움 현대미술실에서 상설전시하고 있는 소나무 한 그루뿐인 명작은 배씨가 함양군 서상면에서 소나무 뒤쪽의 비닐하우스를 희뿌연 새벽 안개가 뒤덮는 바로 그 순간에 운좋게 촬영한 사진이다.

그는 1980년대 초반 동해안 낙산사 부근의 소나무에서 강한 느낌을 받았고 그 후 줄곧 소나무를 카메라에 담아왔다. 20년 넘게 소나무 사진을 찍다 보니 수령은 물론 지역과 국가별 소나무의 특성을 대강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됐다. 그는 “배나 집을 짓기 위한 소나무보다 경주나 서울 근교 왕릉 주변의 소나무숲이 마치 죽은 왕들의 영혼이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것처럼 특별하게 다가온다”며 “촬영의 소재가 소나무뿐 아니라 왕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서울 창덕궁을 지속적으로 촬영해 온 그는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알람브라궁의 요청으로 3년간 궁의 숲과 정원을 촬영한 뒤 지난 13일까지 두달여간 알람브라궁에서 두 궁의 사진전을 펼쳤다.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선 오는 30일부터 서울과 그라나다의 궁 사진을 비롯해 소나무와 바다, 제주오름의 사진을 공개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

함양=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