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속이는 것도 가지 가지다. 원산지를 속이고 함량을 속이고 성분을 속이고 가격을 속인다. 또 몸을 속인다. 멀쩡한 몸을 병든 것으로 위장해서 병역의무를 피하기도 한다. 또 주소를 속이는 위장전입은 이제 지도층 인사의 경력처럼 되어 있다.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언론들의 속임은 이제 다시 공론(公論)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다.

속인다는 것이 무엇일까?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조작하는 것이다. 또는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것이다. 사상의학의 창시자인 이제마는 <격치고>라는 저술에서 속임의 네 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이를 필자 나름으로 변통해서 풀어 보면 아래와 같다. (* 이제마는 뜻을 속이는 것, 마음을 속이는 것, 몸을 속이는 것, 노력을 속이는 것의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 뜻을 속이는 것이다. 당리당략을 쫓고 사리사욕을 채울 욕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마치 민생을 위한 것처럼, 국익을 위한 것처럼 대중을 속이는 것이 그런 류다. 권력과 재력에 대한 욕심을 거창하고 그럴싸한 뜻으로 포장해서 뜻을 속이는 것은 정치판의 상식만도 아니다. 학계에서도 종교계에서도 관행화되어 있다,

둘째, 바름(正)을 속이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 판단은 공정하고 불편부당해야 한다. 만약 같은 범죄적 사실을 두고도 사람에 따라서 말이 달라진다면, 자기편이면 철저하게 감싸고 상대편이면 철저하게 탄핵한다면, 그렇게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면 바름을 속이는 것이다. 편파적이고 당파적 이익을 사회정의로 앞세운다면 대중을 속이고 사회를 속이는 것이다. 공정성이 무너지고 당파적 가치만이 횡행한다면 사회적 해체에 다름 아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이제 양극화를 넘어 해체로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셋째, 처신을 속이는 것이다. 독선적 처신을 원칙주의로 가장하고 야합을 통합으로 위장하고 무원칙한 기회주의적 처신을 현실주의로 미화하는 것들이 그런 경우다. 또 횡포함을 단호한 것처럼, 비굴함을 인내의 미덕으로 가장하는 것도 다 처신을 속이는 것들이다. 권력 밖에 있을 때는 비판의 날을 세우고 권력 안에 들어가면 어용이 되는 이중성, 다 처신을 속이는 짓이다.

넷째, 일을 속이는 것이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척 하는 것이다. 일에는 관심이 없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 조작에 열중하는 것이다. 이미지 조작의 시대, 그래서 정부기관들도 지방자치단체들도 국민의 세금으로 ‘일 하는 척’하는 홍보를 하는데 열심이다.

이상에서 속임의 네 가지를 간단히 살펴보았지만 속이는 각종 기법과 그 유형, 사례들을 예시하기로 하면 아마도 한권의 책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2 그런데 남을 속이는 것, 왜 속이는 것일까?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이득을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말 속이는 것이 이득이 되는 것일까?

이제마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천하의 사람들이 다 속이더라도 너는 속이지 말라’고 후학들에게 경고한다. 왜 그랬을까? 정말 자기를 지키고 자기에게 득이 되는 것은 속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하 사람들이 다 속인다 해도 그래서 속이는 것이 사회적 관행이 되고 합법이 된다고 해도 인과의 섭리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인과의 섭리는 다수결로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속이는 것이 끝내 무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괜찮고 당분간 무사하다고 해서 그 것이 언제까지나 괜찮고 무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속이고 사람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인과의 법칙, 섭리는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속이지 말라는 것’ 달리 말하면 인과의 섭리, 법칙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말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정말 인과에 밝다면 속일 수 없고 속이려 들지 않을 것이다. 속일 수 있고 속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과를 비켜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속인 결과를 스스로 거두지 않을 것이라는 영악함(?)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그 영악함이 어리석음이다. 속일 수 없는 것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이점도 하나 더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속인다는 것은, 생각과 말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또 다른 것이다. 분명히 아닌 줄 알면서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고 또 말은 이것이 옳다고 하면서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논다. 속이면 속일수록 그 분열은 심해진다.

그리고 분열증이 심해지고 그 관성이 붙으면 거짓에 대한 참회와 반성력 자체가 실종된다. 그렇게 되면 거짓과 진실의 개념이 없어진다. 마치 연기에 충실한 배우들이 연기와 현실을 혼돈하듯이. 그러니까 남을 속이는 것은 자기 분열을 가져오고 자기 내면 세계와의 소통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달리 자기 정체성의 파괴라고 할 수 있다. 이득을 보고자 속인 것인데, 실은 그것이 자기분열과 자기 파괴로 몰아간다. 이점 결코 간단히 생각할 것이 아닌 것 같다.

배영순 (영남대 국사과교수/ baeysoon@yumail.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