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02년, 2006년에도 선보였던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전략을 또다시 구사하고 있다.

올들어 ‘4·5 장거리 로켓 발사’, ‘5·25 제2차 핵실험’ 등 군사적 도발 이후 8월부터 대미·대남 유화 조치로 전환했고, 18일에는 ‘양자 및 다자회담’ 의사까지 타진했다.

하지만 북한이 그동안 ‘핵포기’를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았던 선례를 감안하면, 이번 역시 ‘근본적 변화’로 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 역시 아직은 ‘전술적 변화’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먼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18일 ‘양자 및 다자회담’ 참여 의사를 표명한 것을 주목하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북핵 6자회담에 복귀하느냐에 따라 북한의 의도를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주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말하는 다자회담은 반드시 6자회담만은 아니고, 다양한 다자회담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문별로 바구니에 담아 포괄적으로 협상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면서 “시간을 끌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최근 대미·대남 유화조치는 전형적 협상술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2002년, 2006년에도 ‘도발 뒤 협상 및 대화’로 이어지는 똑같은 전략을 구사했다”면서 “북한은 핵포기를 안 할 것이며, 일시적 제재는 감내하면서도 제재 완화를 위해 대화를 제의하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이번에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오는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군사 부문에서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북한 정책결정의 중요한 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2년은 고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이자 김 위원장이 70세가 되는 해로, 후계체제 구축에도 주요 기점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강성대국 건설을 앞두고 체제 안정화를 위해 미국과 ‘빅딜’을 하겠다는 전략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의 건강이 많이 회복됐지만 아주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북한도 시간이 많지 않고, 그런 면에서 북미·남북관계에서 더욱 전향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정부는 북핵 협상과 발맞춰 6자회담에 적극 참가하되,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어떻든 회담은 해야 하지만, 북한의 근본적 변화가 없기 때문에 낙관은 불허한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경제분야 등에서는 강성대국 건설이 어렵고, 오로지 남은 것은 핵밖에 없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대화는 유연하게 하되 핵문제에 대해서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정부 정책”이라고 말했다.

신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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