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대전=곽성호기자

프로야구 현역 최고령 투수인 송진우(43)가 지난 16일 ‘전격’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4월 3000이닝 투구라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대기록을 달성했을 때만 해도 “은퇴할 시기지만 팀 우승의 기쁨을 다시 맛보고 싶다. 최선을 다하겠다”며 시즌이 끝날 때까지 그라운드에서 계속 활동할 뜻을 분명히 했던 그였기에 ‘전격’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것 같다.

비가 내려 경기가 연기된 20일에 대전 한밭구장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16일 구단이 그의 은퇴 사실을 발표하고, 18일에는 공식 은퇴 기자회견도 가진 그였지만 지난 21년 동안 그랬던 것과 다름없이 어김없이 한화 구단으로 ‘출근’을 한 것이다.

1989년 한화의 전신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한 송진우는 21시즌 동안 통산 최다승인 210승, 사상 첫 2000탈삼진 및 3000이닝 투구 등의 기록을 남기며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43살의 나이(실제는 1965년 6월16일 생으로 한국나이로는 45살이다)에 야구선수 인생을 접게 된 송진우는 지난 18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 팀에서 21년 동안 프로생활을 했다. 대학졸업 후 어린 나이에 프로에 들어와 45살까지 앞만 보고 달렸다. 많은 시간 흘러 은퇴를 결정했다. 프로선수로서 기록도 많이 세웠고 좋은 선배와 지도자도 만나 좋은 성적도 냈다. 의미있는 프로생활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그라운드를 떠나는 소회를 밝혔다.

‘그래도 많이 섭섭할 것 같다’는 인사말에 “언젠가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올시즌을 시작하고 4월 말 2군행 통보를 받고 잔류군에서 훈련을 하면서 이상하게 그 때쯤부터 팀 성적이 안 좋았다. 우리 팀 성적이 거의 바닥수준까지 내려갔다. 성적이 안 좋아지면서 세대교체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결심을 했다. 한화가 더 강한 팀으로 변신하기 위해 내 스스로 정리를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했다”고 답했다.

송진우는 최고령 투수답게 경기출장, 선발승, 구원승, 완투 및 완봉승, 세이브, 노히트노런 등 투수 전부문에 걸쳐 역대 최고령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9월13일에는 SK 와이번스 전에 선발로 나와 최고령 선발승(42세 6개월 28일)을 거뒀으며 지난 4월26일에는 최고령 경기 출장기록(43세 2개월 10일)을 세웠다. 국가대표로서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과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우승의 주역이었다.

세계적으로 진귀한 기록도 있다. 1992년 19승8패17세이브로 다승왕과 함께 구원왕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쥔 것은 미국의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도 없는 기록이다. 그는 또 프로 데뷔전에서 완봉승(롯데전)을 거두며 한국 프로야구 유일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래서 ‘기록’얘기부터 했다.

“200승, 2000탈삼진보다 3000이닝이 가장 의미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숫자상 20년간 150이닝 이상 던져야 가능하다. 20년간 꾸준히 던질 수 있어 자랑스럽고 야구하면서 좋은 지도자와 선배들을 만나 많은 기록도 세웠다고 생각한다.”

송진우가 이토록 롱런할 수 있었던 건 철저한 ‘자기관리’가 있었기때문일 것이다. 담배는 애초에 시작도 안 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형제들이 술을 못해 음주도 별로 취미(?)가 없다고 한다. 물론 선수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술을 하게 됐지만 정도를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의 얼굴엔 연륜이 묻어나지만 체격은 대학 때나 지금이나 거의 차이가 없다. 마흔 줄에 접어든 뒤엔 “송진우를 보면서 사는 의미를 느낀다”는 40대 직장인 팬들의 응원 덕분에 더 힘을 냈다고 한다.

“내가 야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선수생활이 짧았다. 나도 입단 때 7년을 생각했는데, 그 세 배를 했다. 내가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몸도 있지만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특히 운동장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즐기면서 야구를 하는 것이 비결이었다. 정해진 훈련을 형식적으로 소화하기보다는 그날 몸 컨디션에 따라 운동량을 조절하는 맞춤훈련을 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 해온 것도 도움이 됐다.”

그는 무엇보다 어느 타자를 상대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선배로서 요즘 후배 선수들의 모습은 마뜩지 않다.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좋아졌지만 너무 몸을 사리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비롯해 양준혁, 전준호 등 오래 한 선수들에 비해 몸을 사리는 것 같다. 자기 몸을 혹사하라는 게 아니라 내 몸을 더 강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는 만큼 당분간은 쉽게 깨지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내 기록이 깨지리라 생각한다.”

그는 오랜 ‘한화맨’으로서 저조한 팀 성적에 대해서도 아쉬운 듯 한마디 덧붙였다.

“초반 의욕적으로 싸우다가 계속 지다보니 선수들의 사기가 저하됐고 이겨야 한다는 의지도 없어진 것 같다. 지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프로야구선수라면 야구장을 찾아주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년에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라도 훈련에 열심히 임하고 파이팅 해주길 바란다.”

그는 ‘은퇴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다. 은퇴 경기는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에 할 예정이다. 그는 “3이닝 정도는 던져야 하지 않을까….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서는 게 은퇴경기 아닙니까. 형식적으로 공 하나 던지고 내려오긴 싫다. 구단에서 제 의사를 존중해 줄 걸로 믿는다”고 말했다. 한화도 프랜차이즈 스타인 송진우를 위해 은퇴경기는 물론 지도자 연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지도자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생각해야겠지만 선수를 믿고 선수단이 운동장에서 마음 편히 야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국내 프로야구가 오래됐지만 관리 야구와 자율 야구 가운데 어느 것이 낫냐는 물음에 대해 정답은 없다고 본다. 몇년간 꾸준하게 지도자 성향을 봐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지도자가 선수를 꾸준하게 믿고 도와주는 게 경기력 향상에 더 도움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야구생활을 시작하면서 백넘버 21번을 달았고, 공교롭게 프로야구 21시즌만에 은퇴하게 됐다.

“내가 어려서부터 21번 달았고, 유난히 좋아했다. 월급날도 21일이고, 아들들은 21일을 ‘아빠의 날’이라고 한다(웃음). 처음 프로에 들어서는 선배에 밀려 1번을 달았는데, 그 선배가 1년 만에 은퇴하면서 21번이 후배 지화동에게 갔다. 즉시 21번을 뺐은 기억이 난다.”

‘대투수’ 송진우도 유난히 어려운 타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양용모, 김호, 김인호를 가장 까다로웠던 타자라고 털어 놓았다.

“아마 10번 맞붙으면 7, 8차례 맞았던 것 같다. 잘 치는 타자보다 세 명의 선수들이 가장 어려웠고 잡으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가운데로 몰려 더 맞았다.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다.”

그에게는 ‘아빠의 길’을 따르는 두 아들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첫째 우석은 천안북일고에서 포수를 맡고 있다. 중학 1학년인 둘째 우현이는 아빠를 그대로 대물림(?),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아무런 얘기도 없었는데 아빠를 보고 그냥 자연스럽게 야구를 시작했다. 내가 야구를 했을 때와는 환경이 많이 달라지고 좋아졌기 때문에 스스로 열심히만 한다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아빠의 직업을 대물림한 두 아들이 마냥 대견스럽다고 한다.

그는 2000년에는 선수협의회 창립을 주도해 초대 회장을 맡는 등 선수 권익보호에도 앞장 서며 ‘회장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살뜰하게 주위를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술·담배를 멀리하며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그의 생활 패턴은 어쩌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의 거리를 멀게 했는지도 모른다. 살갑게 다가설 수 있는 형님보다는 어려움이 먼저 떠오르는 회장님이란 별명이 더 어울렸던 이유다.

간혹 인간 송진우에 대해 험담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기적’이란 비판이었다. 그러나 그의 진심을 알아주는 후배들이 더 많다. 야구가 직업인 프로야구 선수로서 야구를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했던 시간들에 대한 ‘인정’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화려함보다는 꾸준함으로 야구를 한 것 같다. 비록 20승은 못했지만 10승씩은 꾸준히 했다. 계속 팬들에게 꾸준한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다. 특히 나이를 먹고 나선 40대 중년분들이 내게 많은 응원을 보내줬고 큰 힘이 됐다. 끝까지 나를 사랑해준 한화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며 현역으로서의 마지막 인사를 했다.

체육부장 = kj59@munhwa.com

# 송진우는 누구

▲1966년 충북 증평 출생 ▲충북 증평초-세광중-세광고-동국대 ▲1989년 프로야구 빙그레 이글스 입단 ▲1994년 한화 이글스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6년 준우승 ▲2007년 제1회 한국페어플레이상 ▲체격=180㎝, 75㎏ ▲연봉 = 2억4000만원

# 송진우 최고령 기록

▲선발승(42세 6개월 28일) = 2008년 9월13일 문학 SK전 ▲구원승(43세 1개월 23일) = 2009년 4월8일 대전 두산전 ▲완투승, 완봉승(39세 6개월 23일) = 2005년 9월8일 문학 SK전 ▲세이브(41세 3개월 15일) = 2007년 5월31일 사직 롯데전 ▲홀드(43세 1개월 26일) = 2009년 4월11일 대전 롯데전 ▲경기 출전(43세 2개월 10일) = 2009년 4월26일 잠실 두산전 ▲노히트노런(34세 3개월 2일) = 2000년 5월18일 광주 해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