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사법부 간 인연이 그의 서거로 인해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민주화 운동을 이끌면서 군사독재 정권의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던 김 전 대통령은 ‘3·1 민주구국선언사건’(1976년) ‘DJ 내란음모사건’(1980년) 등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거나 사형을 선고받는 등 정권의 탄압을 받았고, 그때마다 사법부가 수단으로 동원됐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 재판을 담당했던 법관들은 대체로 불우한 말년을 보냈다.

제8대(1981~1986) 유태흥 전 대법원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DJ 내란음모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한 대법관 중 한 명이었고, 그 ‘공로’로 대법원장에 올랐다. 그러나 1985년 법관 인사 파동으로 사법 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탄핵 발의를 당한 대법원장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는 지난 2005년 1월 한강에서 투신자살, 주변에 충격을 던져줬다.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사건’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지 1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 경찰과 유족은 그가 허리 통증 등 지병 악화를 비관해 왔다고 밝혔다.

재판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고 이영섭 전 대법원장(2000년 별세)도 정년을 한참 남겨두고 중도퇴임하는 불명예를 겪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에 대해 ‘내란목적 살인죄’가 아닌 단순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들이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당하는 사건 직후인 1981년 옷을 벗었다. “취임 초 포부와 이상이 컸으나 과거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진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는 그의 퇴임사는 아직도 사법부의 암흑기를 회고할 때 자주 인용되고 있다.

권로미기자 ro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