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한국 인디문화의 중심지로 꼽히는 서울 마포구 상수동 홍익대 일대에서는 오는 29일까지 독립예술인들의 잔치인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지난 13일 야외 개막공연(왼쪽·가운데)과 거리 공예 액세서리점 모습. 김선규기자 ufokim@munhwa.com

2009년 현재. 대한민국의 문화 소비자들은 명성에 현혹되지 않는다. 획일화된 대중 소비문화는 이들에게 ‘낡은 것’에 불과하다. 그보다 차별화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에 열광한다. 과거의 문화 소비자들이 명성과 유행, 브랜드에 이끌렸다면 현재의 문화 소비자들은 천편일률적인 흐름을 무시하거나 앞서갈 수 있는 것을 원한다. 이른바 ‘인디(Indie)’의 진화다.

과거의 인디문화가 하위문화(subculture)의 성격을 지녔다면 진화한 인디문화는 주체를 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분출시킨다.

주류(main stream)를 거부하지만 스스로 향유하는 문화가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흐름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쉽게 감지된다.

◆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것을 원한다 = 지난 11일 오후 서울 홍익대 앞의 작은 디자이너숍. 이곳은 요즘 블로거들 사이에서 ‘뜨는 곳’으로 통한다. 이 매장은 세상에 하나뿐인 액세서리를 고객에게 제공한다. 자기만의 제품을 만들고 싶어하던 디자이너들이 해외 유명 브랜드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제조자개발생산(ODM)으로 주얼리를 납품하던 국내 기업과 협업해 만든 업체다. 목걸이, 귀고리, 펜던트 등 매장에서 판매하는 액세서리들은 디자이너들이 직접 디자인해 수공으로 만든 제품들이다. 가격은 3만~70만원까지 다양하다.

이 업체의 허준호 팀장은 “최근 문화 소비자들은 자기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제품을 원한다”며 “단순히 싼 가격이나 명품을 베끼는 것으로는 이들의 취향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단골 손님 오은미(여·31)씨는 “기본 패션 아이템은 대량 생산한 대기업 제품을 사지만 패션 포인트가 될 만한 아이템은 디자이너 브랜드를 선호한다”며 “브랜드보다는 내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르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인근의 M 디자이너숍도 홍대 앞에서는 명소로 통한다. 대기업 디자이너 출신 사장이 이 매장을 연 것은 5년 전.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면 티셔츠와 바지 등 의류가 입소문을 타면서 예술가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단골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매장 관계자는 “정해진 코디가 아니라 어떤 아이템을, 어떤 방식으로 입어도 어울리도록 만든 디자인과 기성제품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디자인, 메시지를 담은 프린트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나는 문화의 주체다 = 지난 7월26일 오후 경기 이천시 마장면 지산포레스트리조트. 이틀 전부터 열리고 있는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을 찾은 관객들로 리조트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메인 스테이지 건너편에 자리잡은 텐트촌에서 기타를 둘러 멘 청년 두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스스로를 록밴드 ‘솔 키친(Soul Kitchen)’이라고 소개한 이들은 무대 위의 공연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만의 콘서트’를 하고 있었다.

“유명 록밴드를 보러 온 게 아니에요. 저희는 이 페스티벌에 참가한 아티스트입니다.”

낡은 통기타 하나와 스네어 드럼이 악기의 전부. 1970년대 사이키델릭 록그룹 ‘도어스’의 노래 제목에서 밴드 이름을 따왔다는 이들은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무대에서 자작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간간이 발길을 멈추는 이들에게 ‘생큐’를 외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연에 관심이 없는 이는 이들뿐이 아니었다. 메인 스테이지 뒤편 언덕에 차양막까지 달린 비치베드를 놓고 책을 읽고 있던 김인설(31·회사원)씨를 만났다. 심지어 그의 귀에는 커다란 헤드폰이 얹혀 있었다.

“제가 좋아하는 밴드 곡만 들을 거예요. 다른 밴드 공연 때는 음악 들으면서 책도 읽고, 맥주 한잔 하다가 낮잠도 자고. 하하하.”

그는 3년 전부터 록페스티벌을 찾는 베테랑 관객이다. 처음에는 그도 모든 공연마다 스탠딩 객석 앞에 자리를 잡고 하루 종일 소리를 질러댔다.

“언젠가부터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공연을 소비하기 싫어지더군요. 자연스럽게 페스티벌의 분위기를 즐기고 내가 원하는 것만 향유하는 거죠. 3일 내내 이렇게 보내면 더없이 알찬 휴가가 되거든요.”

이곳에서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무대에 나올 리 없는 비틀스의 깃발을 들고 다니는 사람부터 프리허그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여고생까지. 이들이 분출하는 에너지는 무대 위의 그것만큼이나 뜨겁고 요란했다.

이동현기자 offramp@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