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실직으로 대리운전이라도 해야 하는데 저를 사면 대상에 포함시켜 줄 수 없나요.”

28일 서울시내 일선 경찰서 교통과와 민원실에는 이른 아침부터 걸려오는 수십통의 문의전화로 벨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하루 전 이명박 대통령의 ‘8·15 특별사면’ 방침이 공개되면서 자신도 사면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은 시민들이 일제히 전화통을 붙잡은 것이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27일 하루에만 100통에 가까운 문의전화에 시달렸고, 다른 경찰서도 수십통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문의 내용은 대부분 음주운전 등으로 운전면허가 취소되거나 정지된 시민들이 자신이 사면 대상에 해당되는지 물어보는 것.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 중 십중팔구는 스스로를 ‘생계형 사면 대상자’라고 주장한다.

면허정지 기간 중 운전을 하다 단속에 걸려 면허가 취소됐다는 한 중년의 가장은 “운전하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운전을 하지 않고는 먹고살 수가 없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면허 취소 상태인데 사면이 되면 다시 운전면허시험을 봐야 하느냐’, ‘아직 내지 않은 벌금은 안 내도 되는 거냐’는 질문을 쏟아내는 민원인들도 적지 않다.

일선 경찰관들은 난감하기 짝이 없다. 종암서 관계자는 “‘아직 지침이 내려오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데도 시민들은 자신의 딱한 사정을 얘기하면서 사면해 달라고 호소한다”고 전했다.

생계형 사면 대상자들의 사정은 딱하지만 일선 경찰관들은 매 정권마다 반복되는 사면이 시민들의 준법정신 약화와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사면이 돼도 다시 음주운전 등 교통법규 위반으로 적발되는 사례가 적지 않고, 사면될 것을 믿고 일부러 범칙금을 내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강남의 한 경찰서 교통과장은 “음주운전 등으로 면허가 취소된 사람들은 또다시 취소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사면으로 운전면허를 다시 취득한 날 음주운전으로 걸린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도 “사면 대상자들 사이에서도 사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고, 규정을 항상 지켜 온 시민들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정부는 사면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용권·박세영·강버들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