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전직 교사인 사와노 시게오씨가 25일 제주에서 열린 ‘2009 한중일 교사 평화포럼’에서 일본 히로시마 지역 고교생들의 평화교육 사례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 비(碑)를 만든 것은 국가가 아닙니다. 전후 50년을 맞이할 때까지 고보(高暮)댐에 추모비를 세우고자 하는 운동에 우리들도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가두모금을 했습니다. 집회나 교류회장에서 모금을 호소했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역사를 배우는 고교생’이라는 책으로 정리해 이 책을 판 대금을 모금에 보태기로 했습니다. (…) 이 비는 우리들의 나라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류최초의 (원자탄) 피폭지에서 자라나 피폭자의 ‘원폭을 허락하지 마라’는 염원을 계승한 히로시마의 고교생은 고보댐의 조선인 희생자의 추모비건설 운동에 참가하는 가운데 과거의 침략전쟁의 사실을 잊지 않기로 결의했습니다.”

‘전후 50년, 피폭 50년’인 1995년을 앞두고 ‘고보댐조선인희생자추모비’ 건설운동에 참여했던 일본 히로시마(廣島) 고교생들이 이 비의 제막식에서 읽은 ‘평화의 맹세’ 다.

히로시마 시내 한 사립고교에서 35년간 사회과 교사를 지낸 뒤 지난해 3월 은퇴한 사와노 시게오(澤野重男)씨는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과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이하 아시아역사연대) 주최로 지난 25, 26일 제주 퍼시픽호텔에서 열린 ‘2009 한중일 교사 평화포럼’에서 히로시마에서 탄생해 전국으로 확산된 고교생들의 평화학습 서클인 ‘고교생평화세미나’에 대해 소개했다.

‘히로시마고교생평화세미나’ 대표를 오랫동안 맡아온 사와노씨가 이번에 발표한 ‘일본 평화교육의 역사와 현황’에 따르면, 일본의 고교생들은 1995년을 맞아 피폭 및 전쟁의 실상과 강제연행·강제노동의 사실을 조사하고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히로시마 고교생들은 1987년과 1991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인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진 히로시마현과 시마네(島根)현의 경계인 간노세가와(神野瀨川)강에 위치한 고보댐에 대한 조사·견학을 실시하고 그 결과에 근거해 1993, 94년 고보댐 워크숍을 실시했다. 1940~49년까지 계속된 고보댐 건설을 위해 조선인 노동자 2000여명이 강제연행됐으며 추위와 배고픔 속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한·중·일 전·현직 교사 80여 명이 참석한 ‘2009 한중일 교사 평화포럼’은 그동안 동북아역사재단과 아시아역사연대의 주최 및 후원으로 진행돼온 한·중·일 교사들의 교류를 정례화하고 심화·발전시키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마련된 행사였다.

‘행복한 공존의 길 찾기- 동아시아 평화교육 수업모형 개발을 위한 경험교류’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 참석한 한·중·일 교사들은 각국의 평화교육 사례를 발표하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김버들(서울여고)·강인숙(서울 노원중)·김순열(제주 동여자중)씨 등 한국측 참여 교사들은 고려시대의 외교·전쟁·교류사와 제주 4·3 사건 등의 주제나 미술·컴퓨터 수업 등의 과목을 가지고 진행해온 구체적인 학습 지도안(교안) 등 평화학습의 경험을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한편 중국 교사단을 인솔한 상하이(上海) 쉬후이취(徐匯區) 교사진수학원의 팡용(方勇)씨는 사례발표에서 근현대 전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개설된 선택과목인 ‘20세기의 평화와 전쟁’을 소개하며 “각종 역사를 홍보한다는 핑계로 복수하는 심리와 민족정서의 대두를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신철 아시아역사연대 대외협력위원장은 “이번 모임의 정례화와 각국 평화교육 사례 공유를 통해 한·중·일 공동 교안이 만들어져 전국에 배포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주 = 글·사진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