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임정현기자

프로야구 전문가들은 올시즌을 시작하면서 ‘2강 5중 1약’의 판도를 그렸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패권을 다퉜던 SK와 두산을 ‘2강’에 놓고 히어로즈를 ‘1약’으로 분류했던 것. 즉 전문가들은 의심없이(?) 히어로즈의 꼴찌를 점친 것.

그러나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듯 히어로즈는 3일 현재 중간순위 5위다. 그것도 4위 롯데와 승률 0.001차다. 지금과 같은 기세라면 가을 잔치로 불리는 플레이오프전에도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빗나간 전망을 만회(?)하려는 듯 히어로즈를 ‘도깨비 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히어로즈와의 경기 결과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을 뿐더러 올시즌 플레이오프전까지 치고 올라갈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팀이 확 달라졌다’고 덧붙인다.

전문가들은 ‘히어로즈의 변신과 진화’를 김시진(51·사진) 감독의 복귀(?)라고 진단한다. 히어로즈 사령탑으로서는 2대 감독이지만 김 감독에게 복귀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지금의 히어로즈가 신인 몇 명을 빼놓고는 현대 유니콘스 선수들이고, 김 감독이 현대의 마지막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김 감독과 만나기로 한 2일은 날씨도 ‘도깨비’였다. 광화문에서 히어로즈의 홈 구장인 목동야구장까지의 멀지않은 거리에서도 장대비가 쏟아졌다가 다시 해가 비치기도 하는 등 꼭 도깨비 놀음이었다. 우산을 들고 목동구장 감독실을 들어서는 기자에게 김 감독은 “오늘경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다”는 말로 인사말을 대신한다. 그리곤 연방 하늘을 쳐다 본다.

‘비로 하루 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라고 건넸더니 “무슨 소리냐. 우리는 분위기가 좋은 만큼, 또 홈경기이기 때문에 경기를 해서 이겨야 한다. 그리고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야구장을 찾은 팬들을 위해서도 웬만하면 경기를 해야 한다”고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될 것을 걱정했다. 그만큼 요즘 팀이 상승세를 타고 있고, 자신있다는 얘기다.(이날 김 감독의 바람대로 두산과의 홈경기는 열렸고, 그의 예상(?)대로 히어로즈는 두산에 3-2로 역전승, 2연승했다)

‘이러다가 정말(?) 플레이오프전까지 치르겠다’고 떠 봤다.

김시진 감독은 ‘무슨 섭섭한 말이냐’는 투로 “성적에 대한 욕심이 없는 프로 감독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지금의 3, 4, 5위는 숫자 놀음일 뿐이다. 아마도 올스타전까지 즉, 7월 경기가 최대 고비이고 분수령이 될 것이다. 솔직히 올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욕심을 내고 싶다”며 은근히 플레이오프 진출을 자신했다.

‘무엇이 팀 분위기를 바꿔 놓았냐’고 물었다. 그는 “달라진게 있다면 내가 좀 독해 졌다고 할까”라며 기자의 반응을 살핀다.

그랬다. 그는 예전보다 좀 독해졌다. 그는 시즌 초 현대 유니콘스 시절의 팀 주장과 히어로즈의 주장을 2군으로 내치는 특급 처방을 쓰기도 했다고 털어 놓는다. “시즌을 시작하고 송지만과 이숭용을 원당(2군)으로 내몰았다. 그들에게는 야구를 시작하고서 2군행이 처음이었다. 그들을 보낼 때 고심에 고심을 했다. 선수단 전체에 미치는 영향과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감독으로서는 냉정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간에는 ‘이제 누구든 2군으로 갈 수 있구나’하는 위기감이 팽배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1군으로 복귀했을 때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이런 것들이 올시즌 선수단 분위기를 바꾸고, 다 잡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도 김 감독은 사람이 너무 좋아 카리스마가 없다는 얘기도 있다’고 그의 성질(?)을 건드려 봤다.

“카리스마, 그거 꼭 필요한 건가”라고 되묻고는 그는 “나도 야구에 대한 철학이 있다. 카리스마, 카리스마 하는데 감독의 카리스마는 선수들이 만들고 느끼는 것 아닌가. 그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선수들을 더 믿을 것이라는 것이다. 게임은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책임은 감독이 진다.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의욕을 가지고 운동장에서 뛰었을 때 감독의 카리스마가 나타나는 것이다. 부드럽고 냉철하게 가고 싶다. 선수들을 더 믿을 것이다. 선수를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운을 믿겠는가. 팀원이 같은 목표를 보고 서로 믿으면서 한경기씩 치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고 ‘믿음’을 강조했다.

지난해 그에게는 재정적으로 튼튼한 팀들의 사령탑 제의도 있었다. 그것을 마다하고 굳이 히어로즈로의 복귀(?)를 고집한 배경이 궁금했다.

그는 “첫 번째로는 남자로서 승부를 걸어보고 싶었다. 나는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으로 역사에 남았다. 회사(구단)는 사라졌고 나는 감독으로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란 말 뒤에는 항상 성적이란 꼬리표가 붙어다닌다. 나는 사람 좋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승부에선 패했다. 선수들과 다시 한번 뜻을 뭉치고 싶다는 건 남자로서의 욕심이다. 이기고 싶은, 반드시 이기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지금의 구단 대표가 팀 인수 후 잘못된 부분을 기꺼이 인정하고 수정하는 자세를 보고 놀라기도 하고 감동을 받았다. 대표로서 그런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정말 쉬운 게 아니다. 구단 대표의 야구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고, 그 점에 끌렸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지난해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 감독관으로 활동하면서 팀밖의 야구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 한 시즌 동안 야구장 밖에서 돈 주고도 못할 공부를 했다. 선수, 코치, 감독을 거치며 이기는 데 집중해 승부에만 집착, 경기의 다른면을 지나친 경우가 많았는데 KBO 감독관 신분으로 보낸 지난 1년 동안 경기를 좀 더 냉정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됐다. 이런 점은 126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프로야구에서 더 큰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에 충분했고 앞으로 감독 생활을 하는데도 큰 약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평했다.

그래도 1년간 마음고생을 해서인지 흰머리가 많이 늘었다고 했다. 그는 “언젠가 늘어 난 흰머리를 보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히어로즈가 불안정한 전력으로 시즌초부터 연승과 연패를 거듭했고 불펜이 약해 경기후반에도 안심을 못하기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해 흰머리가 급격히 는 것 같다 ”고 웃었다.

“히어로즈 선수들은 내겐 자식 같은 존재다. 어떤 선수는 15년 넘게 나와 한솥밥을 먹었다. 유니콘스부터 히어로즈까지 이 팀은 제겐 그런 존재였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미래를 봐야 한다. 내가 일전에 선수들 모아두고 그랬다.‘너희들이 나를 원했고 내가 너희들을 원했다. 그러나 이젠 결과로 팬들에게 다가서지 않으면 우리들의 믿음도 공수표로 그칠 수 있다. 난 너희들을 더 믿겠다’고 말했다. 감독 첫해였던 2007년에는 사실 보내기번트도 많이 댔다. 하지만 올시즌엔 작전보다는 선수의 능력과 창의력을 믿는 야구를 하려 한다. 선수들을 더 믿겠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뜻이다.”

야구 전문가들은 대구상고 시절의 투수 김시진을 같은 또래의 최동원(경남고), 김용남(군산상고)과 더불어 한국 최고의 투수로 손꼽으면서 성격이 좋고 인내심이 대단하다며 한국 야구를 지켜나갈 선수로 평했다. 전문가들의 평가대로 김시진은 이만수와 같이 한양대에 진학했고 곧바로 대표팀에 선발돼 1977년 중미 니카라과에서 열린 슈퍼월드컵대회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야구가 최초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육군(경리단)을 거쳐 1983년에 삼성에 입단한 김시진은 프로 최초로 개인 통산 100승 고지에 선착했다. 1988년 시즌 후 롯데의 최동원과 맞트레이드가 돼 1992시즌까지 선수 생활을 더 했다. 10년간 개인 통산 124승 73패 16세이브, 평균자책점 3.12를 기록한 데 비해 한국시리즈에서는 무승7패로 지독하게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 ‘불운의∼’라는 접두사가 붙기도 했다.

1993년 현대의 전신인 태평양 돌핀스에서 코치직을 시작해 2006년 시즌까지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로 활동하다, 김재박 감독이 LG로 떠난 2006년 시즌 종료 후 유니콘스의 2대 감독이 됐다. 그리고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었다가 지난해 히어로즈의 두번째 감독으로 일선 사령탑에 복귀했다.

체육부장 kj59@munhwa.com

김 감독은…

▲1958년 3월 경북 포항 출생 ▲포항중앙초·포항중·대구상고·한양대 ▲1983년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스 입단 ▲1989년 롯데 ▲프로야구 통산 기록 124승 73패 16세이브 ▲1993년 태평양 돌핀스 코치 ▲1998년 현대 코치 ▲2007년 현대 감독 ▲2009년 히어로즈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