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탤런트 박병호(왼쪽 두번째)씨와 박정숙(맨왼쪽)씨 부부가 지난 21일 경남 남해군 남면 해라우지 마을에서 열린 고기잡이 체험행사에서 참가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해 = 김낙중기자

“왼쪽으로 가세요, 왼쪽! 그렇죠. 거기! 거기에 고기가 많아요!”
지난 21일 한반도 남쪽 끝에 자리잡은 경남 남해군 남면 해라우지마을. 아침내내 끼어있던 짙은 안개가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한 오전 11시30분 마을 바닷가 석방렴(바다의 일부를 돌로 막은 원시 어로시설)에서 개최된 ‘고기잡이 체험행사’에서 한 노부부가 참가자들을 향해 열심히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곧이어 참가자들이 “잡았다”며 환호성을 지르자 노부부는 “거봐! 내 말이 맞지. 하하하. 거기가 물이 조금 더 깊어서 고기가 몰려. 고기 잡아서 좋아하니까 우리도 기분 좋네”라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해 이 마을에 터전을 잡은 탤런트 박병호(71)·박종숙(59)씨 부부였다.

박병호씨는 옆에 서 있던 동갑내기 마을주민 박상호(71)씨에게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참가자들이 많이 없네. 어제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오랜 친구인양 말을 건넸다. 사실 이날 행사장에 나온 것도 흐린 날씨에 참가자들이 적을까봐 걱정이 돼서였다. 박상호씨는 다 이해한다는 듯 “어제는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이 늦어서 행사를 할 수가 없었지. 이 정도 참가자들이면 괜찮아. 곧 초등학생들이 방학을 할 것이고 그러면 부모님 졸라서 많이 오겠지”라며 빙그레 웃었다.

서울 태생인 박씨가 경기 안산시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은 지난해 8월15일 광복절. “날 해방시키러 왔지”라며 껄껄 웃어넘기는 그는 사실 남해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1970년대에 촬영차 들렀던 제주도에 반해 나중에 때가 되면 제주도에 터를 잡고 살려고 했지만 이동수단이 비행기나 배밖에 없는 것이 불편해 마음을 접었다. 그 후 전국 여러 지역으로 촬영을 갈 때마다 ‘귀농’할 장소를 눈여겨 살펴봤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이 여기 해라우지마을이다. 1월에 쑥을 뜯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한 기후와 반농반어라는 점 등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박씨의 동서 내외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점이 귀농결정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5년 먼저 이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는 동서 김옥진(61)·박경희(56)씨 내외도 도시에서 살다가 온 경우. 마을 사무국장 등으로 일을 도맡아하며 마을 주민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동서 내외는 박씨 부부에게는 ‘귀농 선생님’인 셈이다. 박씨는 “요즘 우리처럼 외지에서 시골로 내려오면 주민들과 어울려 살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우리는 동서 내외가 먼저 살고 있어서 그런지 마을 주민들과 아주 잘 지내고 있다”며 “동서와 처제 덕분에 이곳에 연착륙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서 내외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사실 박씨 부부가 마을 주민들과 동화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박씨 부부는 마을에 이사를 오자마자 마을회관에 주민을 초청해 잔치를 벌였다. ‘전입신고’도 하고 어르신들께 인사도 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잔치에 참석해 박씨 부부의 귀농을 환영했다. 최근에는 가뭄에 고생하는 주민들에게 집안 지하수를 퍼올려 물을 제공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한 행동인데 마을 주민들이 고맙다며 콩, 쌀, 마늘 등을 갖다줬다. 박씨는 “가뭄에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지하수를 나눠준 것뿐인데 그 작은 것에도 그렇게 고마워하며 이것저것 챙겨주니 우리가 더 고맙지”라고 말했다.

촬영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박씨는 남해를 떠나지 않는다. 어쩌다 촬영 때문에 서울에 갈 경우에도 촬영이 끝나기 무섭게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꼭 집으로 돌아온다. 박씨는 “좀 극단적인 것 같지만 여기가 천국이고 나가면 지옥”이라며 “서울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통영고속도로만 들어서도 마음이 그렇게 편하고 행복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씨의 일상은 매일 아침 5시에 시작된다. 산책을 시작으로 집 앞마당에 심어져 있는 감나무, 배나무, 무화과, 매실나무 등을 풍월로 얻은 지식을 총동원해 전자가위로 다듬고 마당 한쪽에 마련된 텃밭을 가꾸는 것이 그의 일이다. 텃밭에서 재배한 깻잎, 토마토, 고추, 쑥 등 각종 야채와 바다에서 갓 잡은 생선으로 식사를 하고 직접 심은 무화과로 만든 무공해 잼으로 간식을 먹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박씨보다 귀농을 더 원했던 사람은 부인 박종숙씨다. “여기서는 ‘공기 좋다’는 말을 안 한다. ‘공기 맛있다’고 한다. 여기 할머니들이 부자는 아니어도 맛있는 공기 먹고 산다며 많이 먹으라고 하는데 정말 맛있다”고 말하는 박씨의 얼굴이 빛났다. 그는 “여기 생활이 조금 불편해도 얻는 것이 더 많다”며 “맛있는 공기도 있고 흙도 만지고. 요즘은 내가 풀, 나무와 대화를 한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며 미소를 지었다. 요즘 박씨 부부의 고민은 여름 휴가지를 선정하는 것이다. 이들은 “여기로 이사 오고 나서 휴가를 어디서 보낼지 밤낮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이보다 더 좋은 경치를 가진 곳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남해 = 심은정기자 ejsh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