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역사가 깃든 동명(洞名)을 집값 기대 심리나 부정적 어감 등을 이유로 개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동명 변경은 지명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단절시키고 행정비용을 증가시키는 등 부작용이 작지 않지만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과 자치단체들이 주민들의 요구에 영합해 개명에 앞장서고 있다.

대전 서구 삼천동은 이달부터 둔산3동으로 동명을 바꿨다. 삼천동 주민들은 수년 전부터 같은 둔산 신도시 내에 인접한 이웃 둔산동 아파트에 비해 집값이 훨씬 낮게 거래되고 있다며 동명을 ‘둔산동’ 등으로 변경해달라는 집단 민원을 제기했왔다.

삼천(三川)동은 대전천·갑천·유등천 등 대전의 3대 하천이 합류하는 동네라는 뜻으로 100년 가까이 법정 행정구역명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역구민 요구에 지역 국회의원 등이 선거공약으로 동명 변경을 내세우고 구청장이 행정안전부까지 방문해 지난 1월 최종승인을 얻어냄에 따라 1914년 갑천·신촌·상신리를 병합해 삼천리로 칭했던 지명은 95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동명 변경이 구청간 갈등으로 비화한 곳도 있다. 서울 관악구는 지난해 9월부터 달동네 이미지 개선 등을 위해 며 봉천1동·신림 4동·신림10동 등을 ‘보라매동’, ‘신사동’, ‘삼성동’으로 각각 교체했다. 이에 대해 신사·삼성동 등의 동이 포함돼 있는 강남구가 법원에 명칭사용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등 마찰을 빚고 있다.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개명된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4월 서울 광진구 모진동은 화양동으로 편입됨으로써 95년 만에 역사적으로 사리진 동이 됐다. ‘모진동’이란 이름이 ‘모진 여인들이 사는 동네’에서 유래된 것으로 어감이 좋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대구 달서구 파산동 역시 같은 이유로 호산동으로 이름을 바뀌었다.

최진혁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표를 의식한 정치인이나 자치단체가 지명이 갖는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에 대한 주민 홍보 없이 수동적으로 민원에 끌려가는 것은 자치행정의 의사결정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라고 말했다.

대전 = 김창희기자 chkim@munhwa.com, 전국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