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7일 오후 경기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사바사바치킨’ 동서울대점에서 장익동(오른쪽)씨가 손님들이 주문한 생맥주를 따르며 활짝 웃고 있다. 성남 = 신창섭기자

“‘세상이 나에게만 자꾸 왜 이러나’하는 생각에 자살도 여러 차례 생각했습니다. 약 먹고 죽을 용기는 없어 소주 8병을 들이부었는데 아침에 어김없이 눈이 떠지고 괴로운 현실은 다시 반복되더군요. 어쩌겠습니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할 수밖에요.”

지난 17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의 한 이면도로에 자리잡은 ‘사바사바치킨’ 동서울대점. 오후 6시를 갓 지난 이른 시간이었지만 115.5㎡(35평) 규모의 매장 안에는 벌써 20여명의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바쁘게 홀과 주방을 움직이는 종업원들 사이에서 만난 점주 장익동(40)씨의 얼굴은 ‘3전4기’의 주인공답지 않게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잠시 짬을 낸 그는 아버지의 사업 부도와 빚, 거듭된 사업 실패 등 반복됐던 불행과 시련을 딛고 월평균 5000만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는 점포 사장으로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고난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결혼해서 1년 정도 지나 딸아이가 100일도 안됐을 때입니다. 아버지 사업이 부도로 무너지면서 집안이 빚더미에 올라앉았습니다. 한푼이 급해 아내와 종로에 나가 결혼 패물을 팔고 돈 400만원을 들고 돌아오는데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더군요.”

대학 졸업 후 조경회사에 근무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던 장씨에게 첫 시련이 닥친 것은 지난 1995년. 아버지가 운영하던 건설업체가 부도나면서였다. 100만원이 채 안되는 회사 월급으로는 매달 190여만원의 은행 이자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주류도매업에 뛰어들었지만 경험부족 탓에 몇개월도 지나지 않아 투자금만 날렸다.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에 사슴농축액을 파는 건강식품회사에 몸담았다. 자존심을 버리고 뺨까지 맞아가며 노력한 끝에 손에 쥔 첫달 수당이 400만원. 9개월 만에 대리, 다시 6개월 만에 과장이 되었다. ‘이게 내 길이구나’ 싶어 2001년 회사 동료와 함께 직접 작은 회사를 차렸다. 열심히 판매사원들을 교육시키고 영업을 독려한 끝에 매달 4000만원 안팎의 매출을 올렸다. 순식간에 아버지가 진 빚 1억8000만원을 다 갚았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회사 사원들이 일을 잘한다는 소문에 모 화장품 회사 팀장이 위장취업을 했고 한달 만에 유능한 직원 11명을 빼갔다. 장씨는 결국 다시 빚 1억원을 남긴 채 사업을 접었다.

매일 매일이 술이었다.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는데 돈이 없어 항상 제일 싼 것을 살 수밖에 없을 때 가장 눈물이 났습니다. 그때 기억 때문에 아이가 뭘 해달라고 하면 버릇 나빠지는 것을 알면서도 다 들어줍니다.”

◆넘어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났다 = 가혹한 세상을, 운명을 한탄하며 술을 마시던 2003년 겨울 어느날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식당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술이 확 깼다. 아내와 상의 끝에 장인에게 돈 70만원을 빌려 중고 시장에서 테이블 3개를 구입해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곰장어를 하루 10㎏씩 사다가 굽고 또 구웠다. 곰장어 맛있는 집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불원천리 달려가 비법을 물었다.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한 첫날 40㎏의 곰장어가 동이 났다. 3개의 테이블은 한달 뒤 25개로 불어났다. 늘어나는 손님에 신이 났지만 포장마차 장사는 쉽지 않았다. 여름에는 온몸에 땀띠가 나지 않은 곳이 없었고 겨울에는 걸레가 얼어 손으로 비벼 녹인 뒤 테이블을 닦았다. 장마철에 텐트가 바람에 날아가 큰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했다. 처음에는 그저 내일 먹고살 돈이라도 벌면 좋았는데 슬슬 내 점포에서 장사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결국 장씨는 ‘이번에 망하면 갈 곳이 없다. 정말 목 매달고 죽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2005년 10월 그동안 모은 돈과 주변에서 빌린 돈으로 꿈에 그리던 내 가게를 열었다. 몇 달간 꼼꼼하게 가게 자리를 물색한 끝에 결국 자신의 모교였던 동서울대 앞에 치킨전문점을 열었다. “가게를 연 첫날 매출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게를 찾은 사람이 400명이었고 포장까지 해서 팔린 닭이 500마리, 그리고 매상은 380만원이었습니다. 눈물이 핑 돌더군요.”

억대의 빚에 시달리던 그는 이제 월 매출이 5000여만원에 이르는 ‘성공한 젊은 사장’으로 불린다. 몇년 전부터 인근 상가 사람들과 힘을 모아 조금이나마 남을 도울 수 있게 됐다는 것은 더 기쁜 일이다. 얼마 전부터 ‘내일 어떻게 살지’가 아니라 ‘10년 뒤 어떻게 살지’를 꿈꿀 수 있게 됐다는 그의 표정은 자신감이 넘쳤다.

“아직 성공을 말하기는 이르지만 제가 다시 일어서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다름 아닌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올 들어 각종 원자재가도 오르고 경기가 나빠 매출이 좀 줄었지만 어려울 때 생각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지금 어려움만 넘기면 분명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성남=김남석기자 namdo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