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특수활동비 등 공금 12억원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비자금의 성격 및 노 전 대통령과의 관련성 여부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이 재임 중 청와대 예산을 횡령한 데다 그 돈이 자금세탁을 거쳐 대부분 남아 있는 점도 이 돈의 주인과 관련해 의혹을 키우고 있다. 검찰이 이 돈에 대해 “의미있게 보고 있다”고 밝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상문 ‘12억 비자금’주인은 누구? = 뇌물 수수 및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재청구된 정 전 비서관의 구속 여부는 21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결정된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의 신병을 확보하는 대로 10억원대에 달하는 비자금의 조성 경위 및 목적, 노 전 대통령과의 관련성 여부에 대해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차명계좌를 통해 조성한 이 비자금이 그의 돈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비자금은 지난 2003년 말 총무비서관으로 임명된 정 전 비서관이 노 정권 집권 말까지 4년여에 걸쳐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비서관은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등에서 ‘뭉텅이’로 수차례에 걸쳐 돈을 빼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청와대 내외부 감사 시스템이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도 높았다는 점에서 이처럼 오랜 기간 거액이 몰래 빠져나간 것은 개인적 목적이 아닌 다른 용도의 ‘비자금’일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 돈의 성격과 규모, 흐름에 대해 좀 더 면밀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돈의 규모도 늘어날 수 있고, 수상한 자금 흐름이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 돈이 대부분 사용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도 이 돈의 주인이 다른 사람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퇴임 뒤 특별한 목적을 위해 돈을 보관하고 있을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돈이 치밀하고 은밀한 자금 세탁 과정을 거친 점도 돈의 출처를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몰랐나 =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집사’이자 막역한 친구이지만 재임 중 청와대 안방 살림을 도맡으면서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전 비서관이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을 위한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하지만 정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의 암묵적 묵인 또는 지시 하에 몰래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도 열어 놓고 수사를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이 돈의 존재를 몰랐다 하더라도 퇴임 뒤 정 전 비서관이 이 돈의 실체에 대해 보고했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특히 정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600만달러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점도 이런 추정을 가능케 한다.

김충남기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