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3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복지지원금 횡령사건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예산집행 실명제 도입을 지시한 것은 29조원에 육박하는 이른바 ‘슈퍼 추경(추가경정예산)’ 편성의 효과를 극대화하지 않을 경우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추경 본연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최근 적발된 서울 양천구청과 전남 해남군청 공무원들의 복지지원금 횡령사건을 겨냥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몇 년에 걸쳐 매달 이뤄진 횡령사건에 대해 함께 근무하는 동료조차 몰랐다는 점에서 정부의 행정·감시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만약 공무원들의 복지지원금 횡령이 계속 이어질 경우 경제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서민들의 삶을 더욱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재정지출을 통한 경제위기 극복을 노리는 정부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게 된다.

특히 사상 최대 규모의 추경 편성을 통해 재정지출을 대폭 늘린다고 하더라도 최종 수요자에게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효과가 상당 부분 악화될 가능성도 있어 추경이 관리대상수지만 악화시킬 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장기적으로 통합 복지전달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추경 편성과 재정지출의 조기 집행을 추진 중인 정부로서는 하루빨리 비리 가능성을 사전에 원천봉쇄할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은 결국 이를 막기 위한 단기처방으로 예산실명제 도입과 횡령금액의 2배 추징 등을 지시한 것이다.

그동안 예산 집행은 중앙에서 교부금 형식으로 지방자치단체에 할당하면 지자체 임의로 쓰기 때문에 정확한 내역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대책이 이뤄지면 중앙정부에서 교부금을 주는 단계부터 관련자들의 실명을 기록으로 남겨 최종 지자체 실무자까지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4월중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수조원 규모의 뭉칫돈이 지자체로 내려가기 때문에 실명제를 통해 헛된 곳으로 누수되는 일 없이 적절한 곳에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산 가운데 지방 교부금 같은 것은 일단 지자체에 넘기면 그 사용처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중앙에서부터 지자체 말단까지 담당 공무원의 실명을 기록하면 보다 책임감 있는 예산 집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음성원기자 es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