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관리·감독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권위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오염된 혈액이 시중에 유통되는가 하면 살모넬라균에 감염된 땅콩버터나 칠리고추가 판매되는 등 소비자 보호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FDA는 부족한 인력과 재원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지만 분노한 미국인들은 ‘FDA 무용론’까지 제기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인이 쓰는 1달러 중 25센트는 FDA의 규제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제품 구입에 지출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FDA는 미국에서 ‘식품 및 의약품 안전’의 상징적 존재로 여겨져왔다. 또한 FDA의 기준은 전세계의 기준이 돼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잇단 과실로 인해 1906년 설립 이후 100여년간 위세를 떨쳐온 FDA가 명성을 다시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잇단 사고들 = 지난해 3월 FDA는 홈페이지를 통해 2007년 1월부터 혈액응고방지제 ‘헤파린’을 주입하던 환자 103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문제의 헤파린을 만든 백스터사는 오염된 중국산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4월엔 살모넬라균 감염 토마토가 미주지역을 뒤흔들었다. FDA는 토마토의 살모넬라 감염을 경고했지만 이후 조사에서 주범이 멕시코산 칠리로 판명되면서 토마토 재배 농가만 애꿎게 피해를 당했다. 감염경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난해 말부터는 살모넬라 감염 땅콩버터로 9명이 숨지고 1200명 이상이 감염되는 사태가 벌어져 지금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또 지난주 노스캐롤라이나 연방검찰은 살균처리를 하지 않은 주사기를 시중에 유통시킨 업체 ‘앰2팻’의 책임자 2명을 기소했다. 이 주사기를 맞은 환자 중 5명이 사망했고 수백명이 세균에 감염됐지만 업체는 문서 조작을 통해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시대에 뒤처진 관리·감독시스템 = 이 같은 사고로 인해 미국에선 “FDA가 아예 작동하지 않거나, 역기능을 하고 있다”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AP통신은 “FDA의 쇠락에는 단순하고 간단한 원인이 있는 게 아니다”며 “비정부단체들이 2007년에 이미 FDA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실패하는 등 미국인들이 위험에 빠져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FDA는 이 같은 사고들이 부족한 인력과 재원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2008년의 경우 전년도에 비해 5.3% 올린 21억달러의 예산을 배정했고 올해도 24억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FDA 감독시스템이 급속하게 글로벌화하는 제약, 식품업계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FDA를 책임질 상임위원들을 공석으로 남겨 놓은 것도 FDA를 표류하게 만든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 FDA 분리 불가피할 듯 =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FDA 현대화 작업에 최대한 빨리 들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백악관이 추진하는 방안은 FDA의 식품과 의약품 부문을 분리해 새로운 식품위생 전담기구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의회에서도 FDA는 의약품 업무에만 집중하고 식품 안전을 전담하는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농무부(USDA) 소관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는 FDA 혁신을 위해 차기 FDA 국장도 외부에서 발탁할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소아과 의사이자 볼티모어 보건국장인 조슈아 샤프스타인과 생물테러리즘 전문가인 마거릿 함부르그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미기자 alway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