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쯔~와!’
쭉 뻗은 푸른 대줄기 위로 남해의 바닷바람이 하얀 구름을 몰아간다. 순간 망망한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두 팔을 하늘로 쭉 뻗고, ‘후∼흡’ 들이마신 한 호흡엔 3월 초 차가움 속에 남해의 때이른 봄내가 느껴진다.
‘쯔와∼’ 다시 한번 바람이 대죽을 흔들자 이번엔 죽향이 코 끝에 떨어진다. “정말 상쾌하죠?”


지난 4일 오후 경남 사천시 곤양면 서정리 비봉내마을 대나무 숲 체험현장. 오전 9시부터 서둘러 서울을 출발, 4시간 30분가량을 좁은 승용차에 앉아 달려온 찌뿌듯함이 한순간에 달아났다. 경부고속도로,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등 고속도로만 4번 갈아타고 ‘1촌1명품’을 찾아 온 정말 ‘먼∼길’이었다.

“하늘이 맑으면 더 좋죠.” 옆에서 자꾸 말을 거는 이는 이 마을 촌장 강태욱(43)씨. 커다란 덩치에 짧게 툭툭 끊어진 말을 던지듯 하는 무뚝뚝함을 가치로 치는 경상도 사나이의 전형이랄까. “우리 마을 대나무 숲은 정말 온몸으로 자연이 느껴지고, 체험하는 곳입니다. 그러려고 만들었죠.”

정말 그랬다. 총 3만3000여㎡(약 1만여평) 산지를 빼곡히 채운 5만여 그루의 각종 대나무들. 그 사이로 요리조리 운치있게 굽은 1.4㎞의 산책길, 그 길을 둘러싼 녹색 잎으로 치장하고 쭉쭉 뻗은 대나무들의 늘씬한 자태는 보는 순간 도시에서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지난 1965년 아버님이 다 심으신 것입니다. 5만여 그루가 되지 않나 싶은데…. 그냥 혼자 보기엔 아깝다 싶어서….”

강 촌장이 투덜거리듯 말하지만 실제 지난 1999년 귀농해 부친의 대나무 숲을 물려받아 3년여의 준비 끝에 2002년 첫 문을 열었다는 비봉내마을의 대나무숲 체험현장은 알찼다.

일단 체험현장 구성이 좋았다. 작은 원두막 두 채가 서있는 산책길은 산등성이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원두막쪽 입구로 나오도록 꾸며져 있다. 어느 방향이 입구랄 것 없이 발닿는 곳으로 가면 제자리로 오는 셈이다. 대나무 숲 아래는 아이들이 죽으로 피리를 만들며 노는 체험 놀이터가 마련돼 있고, 놀이터에는 대나무로 만든 굴렁쇠와 그네 등 각종 놀이기구가 배치돼 있다.

비봉내마을 대나무 숲 체험의 또 다른 장점은 현장 체험이 숲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키우는 딸기밭 체험에서부터 남해에 인접한 사천의 특성을 살려 배를 타고 나가 인근 무인도를 체험하는 프로그램까지 운영되고 있다. 각 프로그램은 방문하는 도시의 가족들이 단순히 시골에 와 놀다가는 것 이상의 체험을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평소에도 밥때가 되면 대나무 숲에서의 죽 수액으로 만든 고추장을 곁들인 고기파티와 은은한 향이 일품인 죽차 등을 즐길 수 있어 좋지만 특히 5월에는 죽순이 나와 먹을거리와 놀거리가 더욱 풍성해진다.

대나무 죽향으로 몸을 풀고, 통통배 타고 무인도 뱃놀이까지 말 그대로 육해의 즐거움을 다 누릴 수 있다는 게 비봉내마을의 최대 장점인 셈이다. 당연히 방문객이 늘어 지난 2007년 연간 1만5900여명이었던 방문객은 지난 2008년 2만8000여명으로 급증했다. 이같은 도시 방문객 증가는 비봉내마을 전체의 수익으로 연결된다.

다만 숙박시설이 없고 주민 민박을 해야 한다는 점이 한 가지 아쉬운 점. 그러나 5월쯤 숙소시설을 신축할 예정이어서 이 단점도 사라질 전망이다.

흔히 12월과 1, 2월은 비봉내마을의 농한기로 꼽힌다. 아무래도 숲이 겨울을 타다보니 주말 외 평일에는 방문객이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날 역시 비봉내마을은 방문객의 발길이 뜸했다. 때마침 수년 전 대나무 통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하며 강 촌장과 인연을 맺은 뒤 형제처럼 지내고 있는 김인산(50)씨가 산책로를 걷다가 원두막에서 죽피리를 불어 운치를 더했다. 죽피리는 도레미까지의 음이 표현될 뿐이지만 아이들의 웃음이 보태지면서 어떤 오케스트라의 화음보다 더 정겹기만 하다.

“까르르~” 아이들 웃음 속에 “하하. 그래 그래, 저 죽처럼 쭉쭉 자라거라!” 김인산씨 얼굴에도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겨울에도 푸름과 곧음을 잃지 않는 사군자(四君子)의 하나인 죽의 힘일까. 돌아오는 길에서도 대나무 숲길이 심상(心相)에서 떠나지 않는다.

사천 = 박선호기자 shpark@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4일 경남 사천시 곤양면 서정리 비봉내마을 대나무 숲에서 김인산씨가 아이들과 함께 죽향을 만끽하고 있다. 사천 = 심만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