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푸껫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 한 승무원의 급한 호출에 달려가 보니 중국인 남자 승객이 옆구리를 움켜쥐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니 옆구리가 아프다고 대답한다. 다시 어떻게 아프냐고 물으니 못 알아 들을 정도로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 환자의 상태가 조금 심각한 것 같았다. 각 승무원들에게 기장님 보고, 기내 의사승객 호출, 의료약품 전달, 환자 이동 등의 임무를 나눠 신속하게 처리하고 나서 승객 간호에 다시 집중했다.

환자가 오른쪽 옆구리를 눌러달라고 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아픈 부위를 눌러주니 조금은 나은 표정이었다. 마침 기내에서 미국인 간호사가 나타나 환자의 혈압과 맥박을 재보니 다행히 정상이다. 그래도 환자는 죽겠다는 시늉을 하면서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환자의 동행인들이 환자의 병명을 필담으로 설명해 주는데 사전을 펼쳐 확인해 보니 신장 결석이다. 환자는 평소 신장 결석 증세를 앓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신장결석 증상 시 먹는 약이 있냐고 물어보니 환자는 약은 필요 없다며 뜨거운 물과 함께 아픈 옆구리를 계속 눌러달라고 요청했다.

기장님이 위성전화를 통해 회사 항공보건 의료원에 문의해 기내에서 가능한 몇 가지 처방을 받았다. 그러나 약보다는 그냥 뜨거운 물과 아픈 부위 마사지만 해달라는 환자의 요청에 따라 두 시간 가량 환자 승객 옆에 앉아 더운 물을 마시게 하고, 아픈 부위를 계속 마사지해 주었다. 마사지를 하다 보니 어릴 적 배가 아플 때 할머니가 내 배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읊으시던 마법의 주문이 생각났다.

“할머니 손은 약손. 쑤~욱 내려가라. 할머니 손은 약손….”

믿음 때문에 통증이 없어지는 플라시보 효과 때문인지 지압효과 때문인지 실제로 할머니가 배를 쓰다듬어 주시면 신기하게도 아픈 배가 뚝딱 나았다. 어느 약보다 더 큰 효과가 있던 할머니의 약손처럼 나도 환자에게 마법을 써보기로 했다.

“승무원 손은 약손! 쑤~욱 나아라… 승무원 손은 약손….”

내 마법의 주문이 통했는지 환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 덜어지는 듯했고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다가도 나와 눈길이 마주칠 때면 순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두 시간여를 환자 옆에서 간호한 후 무사히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미리 요청한 휠체어에 환자를 태워 담당 직원에게 공항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고는 까맣게 그 일을 잊고 있었는데 엊그제 회사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바로 그 환자 승객으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승무원들의 정성 어린 간호 덕분에 병원 치료를 잘 마치고 중국으로 무사히 귀국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며 비행 중에 헌신을 다해 자신을 간호해 준 승무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뜻밖의 메일에 놀라는 한편 승객이 건강을 회복했다는 소식이 무엇보다 기쁘고 반가웠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게 바로 승무원 생활의 보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물론 그 도움을 제공하는 직업 덕분에 나도 월급을 받아 의식주와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만 내 직업에는 월급과 밥, 옷, 영화 이상의 보람과 가치가 있다는 진리를 이번 중국인 환자 승객을 통해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대한항공 승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