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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캐나다에서 열린 4대륙 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이후니까 지난 12일쯤으로 기억된다. 한 방송의 심야 연예프로에서 김연아가 수상의 기쁨을 안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 뒤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또 다른 한국 피겨 선수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김나영(19·인하대 입학 예정·사진)이다. 아마도 ‘피겨스케이팅’ 하면 ‘김연아’만 생각나는 일반 국민들에게는 낯선 얼굴이다. 또 캐나다 4대륙피겨대회를 TV 중계로 본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김연아의 경기가 끝난 뒤 전광판에 점수가 나올 때 빙판을 가로지르며 몸을 풀던 선수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김나영이었다. 캐나다 대회 출전 순서에서도 김나영은 김연아 바로 뒤였다. 이렇듯 김나영은 항상(?) 김연아의 뒤였고, 팬들의 관심도 뒷전이다. 그래도 김연아를 빼놓으면 한국 여자 피겨 ‘국내 1인자’인데도….

김나영이 김연아가 인터뷰하는 뒤로 눈물을 훔치며 지나던 모습이 며칠간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만나보고 싶었다. 인터뷰 약속을 위해 전화를 하자 김나영은 “나도 인터뷰하나요”라며 흠칫 놀란 듯했다. 김연아에게만 쏠린 스포트라이트에 김나영도 길들여진 모양이다. 마침 엄마와 함께 노원구 동천실내빙상장으로 연습을 하러 갈 예정이라고 했다. 김나영도 김연아처럼 ‘엄마’가 피겨 선수로 키웠다.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왜 그리 슬프게 울었느냐’고 물었다.

“여러 가지로 속상했어요. 이번 밴쿠버 4대륙선수권대회가 프레올림픽으로 치러진 대회인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었어요. 실수를 많이 했고, 기대했던 것만큼 점수가 나오지 않았어요. 나름대로는 많은 준비를 하고, 이번만큼은 나도 팬들을 놀래(?)주자고 마음먹었는데, 그것이 스스로 부담이 됐는지 실수가 많았어요. 그리고 예전 생각도 나고….”

그랬다. 김나영은 이번 대회에 스스로 건 기대가 컸다. 그는 다시(?) 김연아를 뛰어넘지는 못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세계 10위권 진입을 목표했었다. 그래서 대회 전 많은 것을 준비했다. 대회를 위해 하루에도 수도 없이 뛴 점프를 연습했다. 5일 열린 쇼트프로그램에서 김나영은 첫 번째 점프인 트리플 플립-더블 루프 콤비네이션에서 흔들리더니 트리플 러츠에서는 손을 짚는 등 43.94점을 얻는 데 그쳐 16위를 기록했다. 심리적 부담이 컸던지 김나영은 대기실에서도 울었다. 7일 프리스케이팅에서도 김나영은 두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고 트리플 살코에서 두발 착지를 하는 등 감점을 당하며 76.34점을 기록해 총 120.28점, 16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그리고 그가 말한 ‘예전’이 궁금했다. 사실 김나영은 중학 시절 김연아와 국내 1, 2를 다퉜을 정도로 ‘라이벌’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김연아와 멀어졌을까.

김나영은 6세 때 스케이트를 타러 갔다가, 안짱다리를 고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를 들은 어머니 신금숙(44)씨의 손에 이끌려 피겨를 시작했다. 김나영의 점프는 다른 선수들과 한참 달랐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더블 악셀(2바퀴 반 점프)을 뛰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얼음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힘이 또래와 달랐다고 한다. 딸을 빙판으로 이끈 신씨는 “중학교(연화중) 1학년 때부터 오른쪽 무릎에 퇴행성 관절염을 앓으면서 김연아와 기량차가 벌어졌다. 특히 오른 다리에 힘을 실어야 하는 점프 트리플 루프가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무릎 상태가 썩 좋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좋은 코치 선생님을 붙여주지 못한 것 때문에도 차이가 커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한창 기량이 향상될 때 부상을 당한 것이다. 여기에 좋은 코치를 만나는 행운(?)도 따르지 않았다.

김나영은 김연아와의 차이에 대해 “점프는 어느 정도 자신 있고, 인정도 받는데 동작이 작은 편이라는 지적을 받아요. 그리고 안무에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그쪽에 더 신경을 써야겠죠. 표정이 굳어 있다는 지적도 많이 받아요. 이것도 연아와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죠”라며 나름대로 분석했다.

신씨는 “나영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겪었던 교통사고도 가슴 아프다”고 말한다. 지난 2006년 12월, 어머니 신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앞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그의 차가 정지했는데도 뒤에서 달려오던 고속버스에 받혔던 것. 차 뒤쪽 절반이 날아갔을 정도의 대형 사고였다. 다행히 큰 외상 없이 ‘전치 3주’에 그친 게 기적이었다. 대만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딴 것이 불과 두 달 전. 딸의 소중한 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 신씨는 앞이 캄캄했다고 한다. 이때 사고도 김나영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부상과 교통사고도 김나영의 피겨에 대한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사고를 당한 김나영은 밤마다 몰래 병원을 탈출해(?) 스케이트장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시즌 중에 누워만 있을 수 없다며 엄마와 코치를 졸랐다. 결국 2007년 2월에 열린 전국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캐나다 4대륙선수권 출전권을 따냈다.

신씨는 “표정이나 동작 연기 등의 문제점을 커버하기 위해서라도 좋은 분들에게 안무 지도를 받게 하고 싶다. 경우에 따라선 해외에도 나가 지도를 받게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후원이 필요한데 아직 그런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 지금 훈련장을 찾고 코치로부터 지도를 받는 것도 모두 사비로 충당하고 있어 조금은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나영은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고 한다. 자신이 부상과 사고를 당한 사이 한참 앞서 나간 김연아와의 실력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아직은 ‘정상의 꿈’을 접을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싸이월드 미니 홈피에는 ‘유대회!! 세계선수권대회!! 다시 시작해 보자!!’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김나영은 “큰 대회에서 더욱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해요. 19일부터 열리는 하얼빈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실수하지 않고 꼭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어요. 또 U대회를 발판으로 상위 24명에게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티켓을 부여하는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어요. 2010 밴쿠버올림픽이 피겨 선수 생활의 마지막 국제무대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할 거예요”라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피겨 선수 수명이 대략 25세 정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계속 도전하고 이후 피겨 선수 생활을 못하더라도 지도자로 남아 훌륭한 후배들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라며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지도자 수업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나영은 “엄마가 훈련이나 대회 출전 등 스케줄을 다 관리해주고 계세요. 매니저나 마찬가지죠. 아빠(김종길·47·공무원)는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제 경기를 모두 보시고 안무와 점프 등을 분석해서 조언을 해 주세요. 피겨 관련 기사도 일일이 스크랩해서 보여주시고요. 그런데 나에 대해서는 스크랩할 기사가 많지 않다고 섭섭해하시는 것 같아요. 아빠는 나에게 기둥 같은 분이에요”라면서 “부모님의 관심과 후원이 저의 최고의 기술”이라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누구보다 김나영을 잘 아는 엄마 신씨는 “나영이는 수줍음을 많이 탄다. 좀처럼 말이 없고, 그나마 해도 바로 앞사람에게조차 들릴락 말락 이다. 취미도 별다른 것이 없다. 영화와 음악감상이 전부다. 그러나 승부욕은 강한 것 같다. 지난 2007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5차대회(동메달), 지난해 경기 고양시에서 열렸던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고성적인 4위에 올랐을 때 김나영의 승부욕을 실감했다. 그는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침착한 표정으로 연기했다”고 소개한다.

김나영은 올해 인하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한다. 그는 ‘4년 전액장학금’과 ‘해외유학 지원’을 받는다. 지난해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을 학교에서 좋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무릎과 골반 부상에 포기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시련은 그때마다 그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킨 것 같다.

“올림픽에 나가는 게 가장 큰 꿈이에요. 앞으로는 울지 않을 거예요. 꿈은 꾸는 사람의 몫이라면서요.” 피겨를 향한 그의 아름다운 ‘로망스’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인 것 같다.

김나영 선수는...

▲1990년 11월18일 인천 출생 ▲1997년 인천 연성초-연화중-연수여고 ▲2000년 전국동계체육대회 피겨스케이팅 초등부 1위 ▲2005~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2006년 국제빙상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피겨스케이팅(대만) 동메달, 전국남녀종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고등부 1위 ▲2007년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 주니어부 1위 ▲2007년 ISU 주니어 그랑프리 5차대회(크로아티아) 동메달 ▲2008년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시니어부 1위 ▲2009년 종합선수권대회 시니어부 1위, 인하대 입학
박광재기자 kj5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