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 하나, 기와 한 장도 옛 것 그대로 지키고 있어요. 한옥 생활이 좀 불편하지만 간혹 찾아오는 손님들이 감탄하는 모습을 보면 무엇 하나 함부로 할 수 없지요.”

충북 보은의 99칸 집인 ‘선병국 가옥’을 지키고 있는 21대 종부 김정옥(55)씨는 안채의 부엌부터 열어보였다. 겨우내 땔 연탄을 들여놓은 부엌은 그의 말대로 옛 모습 그대로였다.

부엌벽의 시렁도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황토로 빚은 아궁이에는 가마솥을 걸기만 하면 그대로 100년 전쯤으로 되돌아갈 것 같았다.

김씨는 “옛 집을 제대로 건사하려면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10여년 전부터 행랑채와 헛간을 고시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20명이 넘는 고시생들의 밥을 챙겨내는 게 보통 힘겨운 일이 아니고, 그다지 수익도 나지 않는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사람을 들이는 것이 집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이란 생각에 고시원 운영을 택했다고 했다.

마침 김씨는 메주를 쑤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삶은 콩을 갓 빻아내서 빚은 메주에서는 더운 김과 구수한 내음이 풍겼다. 종택의 기풍은 장맛만 보아도 알 수 있다던가. 안채 옆의 마당에는 장독대들이 즐비했다.

지난 2006년 ‘대한민국 명품 로하스 식품전’에서 1ℓ에 무려 500만원에 팔린 350년 묵은 덧간장(햇간장을 만들 때 넣는 묵은 간장)도 바로 이곳 장독에서 익은 것이다.

최근들어 김씨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장담그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된장만들기 체험에 참여하고 된장 10㎏과 간장 1ℓ를 가져가는 비용이 10만원선. 이 역시 크게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자신이 손을 놓는 순간 다 잊힐 것들이라 종부의 무거운 책무로 알고 옛 것들을 지켜가고 있다고 했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