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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지 모르겠지만 지하철역에서 경로우대권을 달라고 하면 역무원이 주민등록증을 요구해요. 내가 아직 경로우대권 받을 자격인 65세가 안됐다고 보는 모양입디다. 기분이 나쁘진 않아요.” 문단의 원로 김광림(79) 시인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는 얘기에 그렇게 응수했다. 그리고 이런 설명도 덧붙였다. “피부에 어떻게 주름살이 없냐고들 많이 묻죠. 그럴 때면 ‘인두’로 지져서 그렇다고 대답해요.(웃음)”

서울 종로구 원서동 바움갤러리에서 만난 김 시인의 표정과 몸짓에서는 팔순 노인답잖은 재기와 활력이 넘쳤다(바움갤러리는 김 시인의 장남인 김상수(52)씨가 대표로 있는 홍보대행사 바움커뮤니케이션에서 운영하는 갤러리).

“10년전 요로결석으로 잠깐 입원한 것 외에는 아직 병치레를 한 적이 없어요. 요즘도 특별히 아픈 곳이 없죠. 이럭저럭 90까지는 살지 않겠어요? 그리고 여기 보세요. 까만 머리가 새로 나고 있죠.” 자세히 살펴보니 실제로 귀밑머리와 이마쪽 머리칼이 살짝 거뭇거뭇했다.

함경도 원산에서 구상, 이중섭 등을 만난 것을 계기로 1948년 등단한 김 시인은 60여년간 ‘언어로 만든 새’ ‘말의 사막에서’ 등 시집 17권에 선시집 6권, 시론집 9권 등을 냈으며 한국시인협회장도 지냈다. 김 시인은 문단 데뷔후 시를 지적인 요소가 넘치는 역설과 아이러니의 언어예술로 승화시키며 우리 현대시의 수준을 한차원 높여왔다. 그의 시세계는 일본에서도 호응을 얻어 모두 6권의 번역시집이 나왔다.

“이북에서 단신으로 월남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6·25가 터지면서 백마고지 전투에 소대장으로 참가했죠(육군보병학교 갑종16기). 돌이켜보면 사실 요즘 이나마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젊어서 6·25 참전해서 이 산 저 산 뛰어다니며 고생한 것이 다 운동이 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김 시인은 최근 그동안 써놓은 글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실 언제 갈지 모르잖아요. 차근차근 정리해야죠. 그러다 보면 하루가 빨리 가요.” 김 시인은 지난달 팔순기념 시집 헌정식장에서 “고마워서라도 죽기 전에 새 시집 한 권은 꼭 쓸 요량”이라고 말했었다.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써야죠. 시 쓰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동안 이럭저럭 새롭게 쓴 시들이 벌써 30여편이에요. 곧 한권의 시집으로 묶어낼 수 있습니다.” 김 시인의 얼굴에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설렘이 묻어났다.

건강비결 - “매일 1시간 아침 산책… 소식·무욕도 중요”

김광림 시인은 건강 비결로 ‘아침 산책’을 꼽았다. “오전 7시쯤 집 근처인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 일대로 산책을 나가요. 한 시간 정도 걷죠. 산책로를 따라 놓여 있는 체력 단련기구도 이용해요. 기구운동은 10분 정도 합니다.”

김 시인은 “하루라도 운동을 거르면 몸이 개운치 않다”며 “산책을 나설 때는 지팡이를 사용하지만 산책을 마치면 지팡이가 필요 없어질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아진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건강 비결로 ‘소식’과 ‘무욕’을 꼽았다. “음식은 가리지 않지만 많이 먹지는 않아요. 그리고 마음의 욕심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죠. 나이 들어 가정에 책임질 필요가 없어 홀가분한 것도 그런 점에서 좋습니다.” 김 시인은 체질적으로 술을 잘 못한다. 그리고 이틀에 한 갑 정도 피던 담배도 5년 전에 끊었다.

약력

▲1929년 함남 원산 출생 ▲북한 원산공립중(47년) ▲‘전시문학선’에 시 ‘장마’ ‘내력’ ‘진달래’로 등단(55년) ▲월간 ‘주부생활’ 편집장(56년) ▲교통부 행정사무관(60년) ▲고려대 국문과(61년) ▲문공부 문예계장(61년) ▲장안전문대 일어과 교수(83년) ▲월간 ‘현대시’ 주간(90년) ▲한국시인협회 회장(92년)

이경택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