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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머플러에 검정 재킷 그리고 청바지. 트레이드 마크인 흰 턱수염도 여전했다. 실내인데도 카메라를 들이대자 곧바로 브라운 톤 렌즈의 선글라스를 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작업실에서 정일성(79) 촬영감독을 만났다.

정 감독은 지난해 4월 개봉한 영화 ‘천년학’ 이후 1년여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그는 나름대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겸임교수로 있는 동국대 영상학과는 물론이고 여러 곳의 특강요청에 불려다녔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 중에 못 읽었던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책을 읽기 위해 지방의 민박집들을 돌기도 했습니다.” 정 감독의 말을 듣다보니 동년배의 노인들이 지니기 쉬운 ‘건강 염려증’은 그와 전혀 무관한 듯 보였다.

“건강이요? 죽을 고비 두번 넘기니 다 초연해지더군요. 그러고 나니 세상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우선 몸에 수술자국을 남겼다는 사실이 부모에게 큰 불효를 저지른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편협하고, 거만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정 감독은 1978년 교통사고로 장 절제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3년 후 또 직장암에 걸려 한 차례 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건강관에도 변화가 왔다고 한다. “건강 비결이라면 ‘긍정적인 사고’를 꼽고 싶어요. 얼마전 라디오에서 한 스님이 그러시더군요. 자동차도 5년 이상 타면 부품을 갈아줘야 하는데 나이 70, 80에 아픔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집에 손님이 찾아온 것처럼 편안히 생각하라구요. 그런데 다행히 수술 후 아직까지 크게 불편한 곳은 없어요.”

정 감독은 1957년 데뷔(‘가거라 슬픔이여’)한 뒤 50년 가까이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는 현역 최고참 촬영감독이다. 특히 임권택 감독과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추며 ‘서편제’ 등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내 우리 영화를 세계에 알려왔다. 그동안 정 감독이 촬영한 영화만도 140여편에 이른다. 한마디로 ‘한국영화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의 미학’을 포착해내기 위한 정 감독의 카메라 앵글은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곧 다시 제작에 돌입합니다. 이번 작품도 임권택 감독과 함께 하게 되고요.” 영화 얘기가 나오자 정 감독의 얼굴에 환하게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영화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그의 건강비결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 보였다.

건강비결 - 정릉숲 산책 즐겨… “눈·귀도 절로 운동”

정일성 감독은 산책을 좋아한다. 그의 산책코스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 인근에 있는 정릉 숲길이다. “숲속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구경하는 게 정말 좋습니다. 여기에 계절별로 매미소리, 새소리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죠. ‘걷기 운동’은 물론이고 ‘눈 운동’ ‘귀 운동’까지 자연스럽게 다 됩니다.”

음식은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지인들과 함께 ‘싸고 맛있는 집(1인분에 1만원 이하인 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취미다. 서대문 사거리 인근의 김치찜 전문점이나 관세청 옆 골목길의 소고기국밥집이 그가 즐겨 찾는 단골집이다.

약력

▲1929년 일본 도쿄 출생 ▲서울대 기계공학과(51년) ▲영화계 입문(55년) ▲조긍하 감독 영화 ‘가거라 슬픔이여’로 촬영감독 데뷔(57년)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81년) ▲서울예전 강사(83년) ▲한양대 연극영화과 강사(85년) ▲K.J.K 필름 공동설립(98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겸임교수(2000년)

이경택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