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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감색 양복 정장에 벽돌색 중절모, 은회색 레인코트. 노인이라기보다는 중년신사에 더 가까웠다. ‘그리운 금강산’의 원로 작곡자 최영섭(79·사진)씨에게서 받은 첫인상이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뒤쪽, 평소 즐겨 찾는다는 찻집에서 최씨를 만났다. 그는 근황부터 들려주었다. “가을이 되면 가곡하는 사람들은 더 바빠져요. 행사가 많기 때문이죠. 제 경우도 무려 가곡단체 7곳의 명예회장과 회장을 맡고 있어요. 일단 중요한 행사로는 오는 11일 열리는 ‘제4회 가곡의 날 기념 연주회’ 등을 꼽을 수 있죠.”

최씨는 지난해 9월 과로로 쓰러진후 한동안 활동을 중단, 완전히 은퇴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불사조처럼 재기에 성공했다. “그래요. 죽다 살아났죠. 모 대학 창립 기념 칸타타를 기일내에 완성해주기 위해 보름동안 1시간씩 자며 강행군했어요. 그리고 작품을 보내고 이틀후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그리고 올 3월까지 일체의 활동을 중단하고 쉬었어요. 어떤 지인은 제가 죽은줄 알고 문상전화까지 걸어왔죠.”

며칠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다며 최씨는 생강차를 시켰었다. 그러나 대화 도중 감기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연방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가 안 좋은 줄 알죠. 그래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요. 창작과정에서 막힌 것을 뚫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기 위해선 담배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오전 2, 3시쯤 담배가 떨어져 사러 가지 못할 때는 연필을 입에 물고 담배 피우는 시늉이라도 해야죠. ”

이어서 최씨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해줬다. “담배뿐만 아니라 술도 잘 해요. 작품 쓰고 저녁때 맥주 한두병이나 생맥주 두세잔, 소주 한병 정도 안 마시면 어디 되나요. 다행히 이렇게 나이 먹었는데도 혈압과 당뇨가 정상이에요. 혈압은 수십년동안 ‘80-130’을 유지하고 있는데 의사가 그러더군요. 국제학술대회에 ‘샘플’로 제출해도 될 정도라고요. 단 한가지 맥주를 좋아해 지방간 증세가 있는데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

최씨는 60여년전 가곡 작곡의 길에 접어들었다. 1947년 경복중 4학년때 첫 작품으로 ‘그리운 옛봄’을 작곡하고, 경복고등중학교 6학년 재학시절인 49년에 제1회 작곡발표회를 열었다. 이후로 ‘작곡’의 외길을 걸어온 최씨는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90년대에 가곡의 쇠퇴기를 맞았지만 문화 예술계 인사들과 힘을 합쳐 가곡의 진흥에 힘썼고, 급기야 2000년대 들어 다시 가곡 부흥의 물꼬를 텄다. ‘가곡의 날(11월11일)’ 제정에도 최씨의 역할이 컸다.

최씨는 “내년이 ‘작곡발표회 60주년’이 되는 해”라며 “상권 80곡, 하권 80곡 등 모두 160곡이 담긴 기념가곡집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건강해야죠. 그리고 오래 살아야 합니다. 저는 100세까지 살고 싶어요. 왜냐하면 할일이 많기 때문이죠. 가곡도 더 만들어야 하고, 98% 완성 상태에 들어간 오페라 ‘운림’이 무대에 오르는 것도 봐야 합니다. 또 관현악, 기악곡도 더 만들어야 하고요.” 최씨의 얼굴에는 노인들에게서 찾기 어려운 ‘신명’이 넘쳐났다.

건강비결 - 2년전부터 하루 두 끼… “몸을 가볍게”

작곡가 최영섭씨는 건강비결로 ‘2식(食)’과 ‘BMW 이용’을 들었다.

“내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요. 특히 해물섞어찌개는 맛을 본 분들이 모두 반하죠. 식당 차려도 되겠다고요. 그리고 맥주도 즐겨 마십니다. 그렇게 잘 먹고, 마시니 절제를 안 하면 체중이 불어요. 2년 전부터 하루에 2식만 하고 있습니다. 아침 겸 점심을 오전 11시쯤, 그리고 저녁을 6시에 먹습니다. 몸이 가볍고 가뿐해요. BMW는 얼마 전부터 유행하는 얘긴데 이렇습니다. B는 ‘버스’ M은 ‘지하철’ W는 ‘도보’를 일컫는 얘기죠.”

한편 최씨는 본인의 건강에 대해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최씨의 모친 신순례 여사는 아흔다섯까지 장수를 누리다가 4년 전 작고했다.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최씨는 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 중 하나가 어머니가 받은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이라고 강조했다.

약력

▲1929년 인천 강화군 출생 ▲제1회 작곡발표회·경복고등중(49년) ▲인천애협교향악단 상임지휘자(56년) ▲한국작곡가회 회장(88년) ▲오스트리아 비엔나국립음악대학대학원 지휘과(89년) ▲모친 심순례 여사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수상(98년)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 인천에 건립(2000년) ▲한국예술가곡진흥위원회 공동대표(2003년) ▲‘우리 가곡의 날’ 제정위원회 위원장(2005년)

이경택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