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이끄는 당국자들이 빗나간 판단과 해당 정책당국과의 조율 없는 대책 마련으로 경제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책당국 간 사전 조율되지 않은 설익은 발언, ‘찔끔대책’과 ‘미지근 대책’이 오히려 시장의 불신을 조장하고, 경제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책당국 간 사전조율을 통한 선제적이고 결단력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 조율 없는 정부 대책, 흔들리는 시장 = 해당 정책당국과의 조율도 없이 내놓은 정부의 섣부른 발언은 혼란만 가중시켰다. 시중은행의 외화유동성 부족과 관련, 지난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 중이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은행이 지급 불능에 빠지지 않도록 만기 채무 상환에 필요한 자금에 대해서는 전액 외환보유액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중앙은행이 외환 유동성을 공급할 때는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해 사실상 강 장관의 방안을 거부하는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정부의 신뢰만 훼손됐다.

재정부가 건설사 지원 방안과 함께 내놓은 시중금리 인하 방안과 관련해서도 같은 촌극이 벌어졌다. 지난 22일 국정감사에서 강 장관이 “한은과 은행채 매입을 논의 중”이라고 했고, 전광우 금융위원장 역시 “한은이 은행채 매입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말했지만 한은은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재정부와 금융위가 공개적으로 한은을 압박하면서 정책을 밀어붙이는 모양새였다.

정책당국 간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리먼브러더스 인수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산업은행이 리먼 인수를 포기한 날은 9월2일이었고,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가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고 받지 못한 재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을 시도하며 미국 등지로 출장을 나갔다. 이어 외평채 발행을 시도하던 도중 산은의 리먼 인수 포기 발표가 나오고, 금융시장이 패닉상태가 되면서 재정부는 빈손으로 한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 섣부른 발언으로 대책 효과 반감 = 정부가 조율되지 않은 대책을 섣불리 밝히면서 정책의 실효성만 반감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설익은 발언으로 인한 ‘김빼기’가 정책에 대한 기대만 키우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3년10개월 만에 1100원대를 넘어선 지난 9월1일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환율 문제는 정부가 필요할 때 확실히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언제든지 정부가 환율개입에 나서 안정시킬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환율은 정부가 개입을 해도 통제하기 힘든 만큼 이 같은 발언은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게다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국회정책포럼에서 “환율과 주가 변동이 상당히 클 수 있지만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원·달러 환율은 이미 두 달 전보다 무려 300원이 오른 142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금융위는 “증권거래세 인하를 포함한 대책을 검토 중”이라고 지난 16일 밝혔지만, 여전히 대책은 발표되지 않으면서 “금융위원회가 아니라 검토위원회다”는 자조섞인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 정책당국간 조율하지 않은 정부의 설익은 대책

◆ 치솟는 환율과 관련,

“환율 문제는 정부가 필요할 때 확실히 조치할 것이다.”(9월1일 기자간담회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 한국은행과 조율 실패. “환율과 주가 변동이 상당히 클 수 있지만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한다.”(9월2일 국회정책포럼에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 은행의 외화 유동성 부족과 관련,

“은행이 지급 불능에 빠지지 않도록 만기 채무 상환에 필요한 자금에 대해서는 전액 외환보유액으로 지원하겠다.”

(10월11일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강만수 재정부 장관)

→ 한국은행과 조율 실패. “중앙은행이 외환 유동성을 공급할 때는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10월14일 워싱턴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통화기금 연차총회에 참석한 이성태 한은 총재)

◆ 은행채 매입 관련, 10월22일 국정감사 자리에서

“한국은행과 은행채 매입을 논의 중이다.”(강만수 재정부 장관)

“시중 유동성 사정이 정상화돼 가계, 중소기업들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한은이 은행채 매입을 적극 검토해 달라.”(전광우 금융위원장)

→ 한국은행과 조율 실패. “(25조원을) 전부 중앙은행이 인수할 필요는 없다”(25조원의 은행채를 인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성태 한은 총재)

◆ 주식시장 안정화 관련,

“증권거래세 인하를 포함한 대책을 검토하겠다.”(10월16일 전광우 금융위원장)

→ 여전히 대책 나오지 않아.

◆ 리먼브러더스 인수 관련,

“한국이 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겠다. 뉴욕으로 가 외국환평형기금채권 10억달러어치를 발행하겠다.”(9월4일 신제윤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

→ 금융위원회와 조율 실패. “내가 직접 (리먼 인수와 관련해) 세 번(8월1일, 8월13일, 9월2일)에 걸쳐 금융위원장과 부위원장에게 보고를 했다. (리먼 인수를 포기한 날은) 9월2일이다.”(10월21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민유성 산업은행장)


음성원기자 es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