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오전 긴급 금통위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중구 남대문로 3가 한국은행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동훈기자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급기야 ‘칼’을 꺼내 들었다. 중앙은행 기준금리를 무려 0.75%포인트나 내리는 사상 유례없는 초강수를 던진 그의 뚝심에 시장도 크게 놀라는 분위기다. 환율 및 금리정책 등에서 정부와 시장의 많은 압력에도 묵묵히 버텨왔던 이 총재의 통큰 ‘원샷 처방’은 ‘찔끔찔끔’대책을 남발하면서 오히려 시장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는 정책당국과 확연한 온도차를 보여준다.

이 총재는 사실 그동안 경제부처의 다방면의 압박을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여년 만에 과천으로 컴백하면서 정부와 이 총재는 올해 초 환율 문제부터 금리인하 문제까지 곳곳에서 갈등을 빚어왔다. 정부가 7%의 경제성장률 달성을 위한 수출증대 목적으로 고환율 정책을 주도하면서 이 총재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고 경기 침체를 우려한 대목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를 놓고 정부와 맞섰다.

이같은 갈등이 대표적으로 표면화 된 것이 지난 9월 한승수 국무총리의 이 총재에 대한 ‘경고장’사건. 강만수 장관이 1일 “필요하면 외환시장 개입을 확실히 하겠다”며 시장에 시그널을 준 다음 날 이 총재가 국회 경제정책포럼에서 “외채와 환율 문제는 표리 관계이기 때문에 환율 상승 압력은 당분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맞받아 치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다.

당시 정부는 외국에서 불거지고 있는 한국의 ‘9월 위기설’을 진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이 총재의 이 발언이 환율급등의 도화선을 만들어 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되면서 한 총리가 “입조심 하라”고 경고한 것이다.

최근 은행채 매입 논란에서도 이 총재는 무거운 입을 좀처럼 열지 않았다. 이날 은행채 매입을 전격 결정하기는 했지만 이 총재는 금융위원회가 은행채 매입을 공식 요구했을 때도 “은행채를 전부 매입할 필요가 없다”며 소신을 꺾지 않았다.

정부와 이 총재의 이같은 불협화음은 그가 노무현정부 시절 임명된 데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부산상고 출신이라는 점이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한나라당 의원은 조그만 악재가 부풀려져 위기설까지 나오도록 중앙은행이 중심을 못 잡고 있다고 질타한 반면 민주당은 한은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보다 잘하고 있다며 이 총재를 두둔했다.

그러나 한은 내부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환율하락 우려 발언을 했을 때도 금리를 인상했을 만큼 정권과 무관한 자신만의 소신을 갖고 있는 정통 ‘한은맨’으로 이 총재를 평가하고 있다.

그 어떤 압력에도 묵묵히 갈 길을 가는 이 총재의 이같은 뚝심은 급기야 이날 금통위 결정이 잘 보여준다. 기준금리를 0.75%포인트나 내린 데 이어 공개시장 조작 대상 증권에 은행채와 일부 특수채를 포함시키는 이같은 특단의 조치는 금통위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신속하고 과감한 이 총재의 뚝심이 그대로 묻어난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채를 매입해주고 금리를 최대 0.5%포인트 정도까지는 내릴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0.75%포인트까지 인하할 줄은 사실 생각하지 못했다”며 “이번 조치는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중앙은행의 의지가 확실하다는 것을 시장에 명확히 보여준 것으로 금융위기 이후 나온 당국의 조치 중 가장 파괴력있고 신선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임대환기자 hwan9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