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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젊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원로철학자이며 불문학자, 시인인 박이문(78) 연세대 특별초빙 교수를 경기도 고양시 자택에서 만났다. 주방에서 직접 커피를 타서 내오는 노교수의 표정에는 철학자로서의 엄숙함보다는 온화함이 넘쳤다. 박 교수는 팔순을 앞둔 나이지만 강의를 나가고, 쉬지 않고 글을 쓴다. 그에게 건강 비결을 물었다. “건강에 신경쓰고 살 여유가 없었어요. 책보고 논문쓰고, 공부한다고 여기저기 외국에 떠돌고 이래저래 건강관리에 따로 신경을 쓸 틈이 없었죠. 굳이 꼽자면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것인데 그때 젊은 학생들과 어울리다보면 저절로 젊음을 되찾는 것 같아요.”

박 교수는 일주일에 한 차례 연세대 ‘학부대학’에 나가 강의를 한다. 비록 한 차례지만 3시간짜리이며 영어로 강의를 한다. 또 계간지 ‘비평’에 ‘둥지의 철학’이란 제목으로 본인의 철학에 대해 매호당 100매짜리 원고를 연재하고 있다. 책 출간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문학과 철학,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서평집과 본인의 미 서던캘리포니아대 철학박사 학위 논문인 ‘메를로 퐁티의 존재와 표현(가제)’ 영어판의 번역본도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이르면 모두 연내에 출간된다고 한다. 가히 왕성한 정력이다.

“몸이 건강한 편은 아니에요.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이렇게 보청기를 하고 있잖아요. 눈의 경우엔 각막손상이라고 하는데 돋보기 안경을 쓰고도 책을 볼 때는 또 커다란 돋보기를 들이대야 하죠. 그래도 요즘 편안해요. 연세대 강의 외에는 딱히 부담 갖는 일 없이 좋아하는 책보고, 글쓰고 호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죠. 한창 공부할 때 시달렸던 신경성 편두통이나 위장병 증세도 모두 없어졌습니다.”

박 교수는 전인적 지식인상을 구현한 인물로 통한다. 애초에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가 전공을 바꿔 철학박사 학위를 또 받았다. 학계에서는 프랑스 철학과 영미 철학에 능통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시집도 여러 권 발간했다. 박 교수는 얼마전 펴낸 ‘나는 왜 그리고 어떻게 철학을 해왔나’(삼인 간)에서 자신의 철학관을 ‘둥지의 철학’으로 명명했다.

그는 책에서 둥지의 철학에 대해 “세계관으로서의 철학은 인식 주체의 의식에 의해 감각적 경험의 범주와 해석과정을 거쳐 어떤 의미를 띤 존재로서 재구성된 관념적 건축물이다. 그런 관념적 건축, 즉 세계관으로서의 철학이라는 건축활동, 그 동기 및 건축구조는 새의 둥지 짓기, 그 동기 및 건축구조와 같다”고 설명했다. 그와 나눈 대화 중 “호젓하면서 편안하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둥지’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박 교수는 철학에서의 둥지를 말했지만 ‘동심’을 연상케 하는 그의 티없이 맑은 미소는 그의 몸과 마음이 모두 ‘둥지의 경지’에 접어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건강비결 -‘대중’없이 살며 매일 한시간씩 산책

박이문 교수에게 취미를 묻자 ‘독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취미답잖은 취미다. 그러나 박 교수에겐 그런 취미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산책’이다. 박 교수의 산책은 자택 인근 아파트 단지 숲길과 연세대 교정에서 이뤄진다. “아침에 한시간 정도 집 주변 아파트 단지를 걸어요. 그리고 연세대에는 강의가 있는 날 포함해 주 2, 3회 정도 나가는데 그때 캠퍼스 안에서 또 많이 걷죠.” 걸으며 자연스럽게 건강 관리 효과를 얻고 있는 셈이다.

박 교수는 하루 일과에 대해 ‘대중없다’고 말했다. 매일 새벽 2, 3시쯤 일어나는데 그나마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책 읽고 글쓰다가 싫으면 드러눕고, 내키면 또하고 대중없어요. 일어나는 시간도 날마다 달라요.” 불규칙한 일상에서 오히려 노철학자의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진다.

한편 박 교수는 술과는 오래 전 인연을 끊었지만 담배는 아직도 피우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 끊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반갑씩은 꼭 태우죠.”

약력

▲1930년 충남 아산 출생(본명은 박인희) ▲서울대 불문과(55년) ▲이화여대 불문과 전임·조교수(57년·59년) ▲파리 소르본대 불문학 박사(64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철학박사(70년) ▲미국 시몬스대 철학과 조교수·부교수·교수(70년·72년·79년) ▲포항공대 철학과교수(91년) ▲미 시몬스대 명예교수(93년) ▲연세대 특별초빙교수(2002년)

이경택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