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은 조선 왕조에서 매년 봄·가을 단군에 대해 제사를 지내오던 것을 1909년 단군교(후 대종교) 신자들에 의해 음력 10월3일로 정해졌다. 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로 의미를 가지는 개천절은 1920년대 이후 대종교인들만이 아니라 상해임시정부와 국내의 여러 민족주의 단체들도 경축식을 갖는 기념일이 됐다.

일제강점기에 고통받던 민족에게 민족의 뿌리를 찾고 기념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1949년 9월 국회에서 양력 10월3일을 개천절로 결정하면서 매년 개천절이 되면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건국정신을 기념하며 단일민족의식을 새롭게 부각하는 움직임이 다양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글로벌시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은 이미 100만명의 외국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다민족국가로 변모하고 있고 단일혈통에 뿌리를 둔 민족주의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 다민족국가된 대한민국 = 행정안전부가 지난 5월 실시한 외국인 주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국적취득자, 불법체류자 포함·90일이하 단기체류자는 제외)은 89만1341명으로 인구의 1.8%에 해당하며 이는 지난 2007년 72만2686명에 비해 23.3% 증가한 것이다. 이중 외국인 근로자와 결혼이민자(국제결혼 이주자 및 혼인귀화자) 및 자녀는 64만119명에 달했다. 결혼이민자만 따지면 14만4385명이며 국제결혼가정 자녀는 5만8007명이다. 이미 외국인 근로자는 우리 경제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문화 가정 역시 2020년에는 다섯 가구당 한 가구가 다문화가정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로 이미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가정상으로 자리잡았다.

◆ 멀기만 한 열린민족주의 = 이미 한국사회는 ‘순종사회’와는 거리가 멀지만 국민의 의식은 여전히 농경사회적 ‘순혈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BS가 지난 6월 전국 19세 이상 한국인 700명과 국제결혼 이민자 852명을 대상으로 ‘다문화 가정’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려고 할 때 가장 큰 장애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국제결혼 이민자 중 68.7%가 ‘심각한 사회적 편견’을 꼽았다.

이런 사회적 편견 속에 다문화 가정은 대부분 저소득층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언어·문화적 이질성을 느끼며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또 이들 자녀들은 대개 학습능력과 언어능력 부족으로 학교 교과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한국어가 미숙한 부모에 대해 자긍심이 부족하고 또래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외국인 근로자 역시 신분의 불안정으로 인해 임금을 떼이거나 가혹한 구타나 차별에 시달리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같은 한국사회의 그릇된 순혈민족주의는 세계적 흐름과도 역행한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인식하는 배타적 민족주의는 새것의 창조에 필요한 다양성을 질식시켜 결국 사회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 열린민족주의로 나가야 = 전문가들은 ‘다름’을 용인하는 다문화적 감수성, 열린민족주의야말로 세계화 시대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지적한다. 배타적 민족주의에서 열린민족주의로의 전환과 외국인 주민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함께 이뤄질 때 우리 사회의 경쟁력도 강화된다는 것이다.

설동훈(사회학) 전북대 교수는 “민족주의의 핵심 원리와 긍정성을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재해석의 과정은 필요하다”며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온 다문화 가정이나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는 우리에게 하루빨리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민족주의를 재해석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설 교수는 “개천절은 여전히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의미있지만 보다 넓은 민족주의로, 열린민족주의로 나갈 때 변화된 시대에 맞는 의미를 새로 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병기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