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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매끈한 몸매로 빼입은 아르마니 블랙수트, 날카로운 눈빛에서 흘러넘치는 카리스마, 그리고 그가 즐겨 타는 크라이슬러 자동차…. 누구라도 홀딱 반하게 만들 것 같은 매력적 캐릭터 강패(소지섭)는 그러나 천상 깡패다. ‘초록물고기’에 단역배우로 출연했던 왕년의 배우지망생이지만, 지금은 똘마니 셋을 달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선혈낭자한 피바람을 몰고다니는 잔혹한 폭력조직의 ‘넘버2’ 보스다. 깡패같은 액션배우 수타(강지환)와 ‘실제로 싸운다’는 계약 조건에 따라 ‘리얼 액션’ 영화를 찍게 되면서, 강패와 수타는 누가 깡패고 누가 배우인지 뒤섞이고, 나중엔 둘이 하나가 된다.

배우 소지섭의 ‘화려한 귀환’이랄 만하다. 군복무의 긴 공백을 깨고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 4년만에 영화 ‘영화는 영화다’(감독 장훈)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8일 서울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소지섭은 “강패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연기한 지가 오래돼 제대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강패의 성격과 연기하고 싶은 욕망은 모두가 나와 닮았다”는 그의 말대로, 소지섭보다 강패역에 더 잘 맞는 배우는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도둑맞곤 못살아’(2002년 개봉)와 비교해 얼굴이 달라졌더라”고 말하는 그는 연기 역시 한층 물이 올라 더 매혹적인 배우로 바뀌었다.

“웃기지 않아? 건달인 우리는 쓰레기 소리나 듣고, (건달) 흉내도 못내는 니들은 주인공 소리나 듣고….” “별거 있나? (배우라는 게) 인생 잘 만나서 편하게 흉내나 내면서 사는거지….”(영화중 강패 대사). 소지섭은 “참, 묘한 느낌을 주는 재미있는 대사들이에요. 저는 배우라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잖아요”라고 말한다. 상업적으로 영화를 죽 관통하는 재미는 거친 두 남자들의 주먹질과 액션이지만, 일반인들이 품는 영화같은 삶에의 욕구, 영화인들이 추구하는 현실같은 영화란 이중적 대립구조가 거장 김기덕 감독이 쓴 각본에 녹아있는 알맹이인지도 모른다.

의외로 소지섭은 솔직 담백하다. “배우가 좋아요. 돈도 많이 벌고 사람들이 좋아해주니까요.” 무슨 대단한 ‘철학’을 내세우기보다 “사람들이 찾아주니까 영화를 찍는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댄다. 이번이 두 번째 영화니까 사실 소지섭은 영화 문외한에 가깝다. 그런 그가 저예산 영화라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뜻 이 작품을 택해 투자까지 했다. “생동감, 진실성 있는 캐릭터고 연기할 때 재미있겠다 싶은 시나리오여서였다”고 한다. 소지섭은 “대박을 노린 투자도 아니고, 내 영화다 싶으면 더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또 “김기덕 감독 작품은 빨리 찍기로 유명한데, 경주마 눈을 가리듯 한 두 번의 테이크에 영화를 완성하는 속도감이 몰입에 도움을 준 것 같다”고 했다.

연기 몰입은 강패를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낮에는 조직을 이끌고 폭력 현장을 누비다가도 저녁이면 혼자 쓸쓸히 호텔로 돌아가 양말 빨래를 하는 고독한 존재, 똘마니한테 어머니 생신에 다녀오라고 수표를 내주며 어깨를 다독이는 큰형님, 조직 보스의 배신자에 대한 잔혹한 복수 등 연기가 흠 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어두운 역할을 많이 했어요. 이번 작품도 그랬는데, 시사회서 영화를 보니까 생각보다 거칠지도 무겁지도 않아서 좋았다”면서 “그 공은 봉 감독(고창석)한테 돌려야죠”한다. 리얼액션을 좋아하면서도 강패의 주먹질에 흠칫흠칫 놀라 얼굴에 잔뜩 두려움을 드러내는 봉 감독의 천진한 대사는 적어도 관객을 10번 이상 박장대소케 하는 힘이 있다. 봉 감독이란 ‘영화 양념’도 또 다른 재미임에 틀림없다.

소지섭은 “어둡지만, 여운있는 강패 역할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영화 속 영화의 라스트신 강패와 수타의 갯벌 액션 장면에서 깡패와 배우는 온통 진흙탕에 파묻혀 식별이 안된다. 부하들을 모두 잃고 난 뒤 마지막 집착과 같은 영화 마지막 촬영장면서, 촬영 계약에 따라 싸움에서 진 뒤 드러누워 눈을 감고, 이어 부하와 조직 보스의 원수를 무참히 살해한 뒤 경찰에 체포돼 호송차 유리를 머리로 들이박아 피를 뒤집어쓴 채 치올려뜬 그의 눈빛에 아쉬움과 고독, 회한, 소리없는 처절한 절규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시사회장을 나서는 관객들이 “이 영화 한 번 더 보고싶다”고 하는 말은 소지섭의 그 눈빛에 사로잡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소지섭은 영화평을 부탁하자 “영화는, 그냥 영화일 뿐”이란다.

박수균기자 freewi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