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기수(旗手)를 앞세운 각국 선수단의 입장 행사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한 205개국의 선수단은 국기를 들고 입장하는 기수를 앞세웠다. 이 때문에 기수는 ‘선수단의 꽃’으로 불리며, 그 나라를 대표하는 간판 선수가 맡는 게 관례다. 그러나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기수가 반드시 스타 플레이어만의 몫이 아님을 보여준 국가들이 많았다. 기수 선정에 정치적인 고려나 사회적인 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경우가 많았다. 각국의 기수 선정을 정리해 본다.

◆ 기수는 키 크고 잘 생겨야 한다 = 기수는 선수단의 얼굴이며 그 나라의 얼굴이다. 그래서 스타 선수이면서 잘 생긴 외모, 눈에 띄는 큰 키를 갖춘 선수가 우선 대상이다. 농구선수가 많은 이유다. 중국은 미국 프로농구(NBA)의 스타 야오밍(휴스턴)을 두 대회 연속 기수로 선정하는 등 7회 연속 농구선수에게 기수를 맡겼다. 독일의 더크 노비츠키(댈러스), 아르헨티나의 마누 지노빌리(샌안토니오), 러시아의 안드레이 키릴렌코(유타), 리투아니아의 사루나스 야시케비시우스(골든스테이트) 등 NBA 스타가 줄줄이 기수로 나섰다. 한국이 192㎝의 유도 스타 장성호(100㎏급)를 내세운 것도 비슷한 경우. 스위스는 ‘테니스 황제’로저 페더러가 맡았다.

◆ 현대는 여성 시대 = 현대는 ‘여성 상위시대’임을 입증하듯 여자선수가 맡는 경우도 많다. 일본은 여자탁구스타 ‘아이짱’ 후쿠하라 아이가 기수로 낙점됐다. 야구 열기가 높은 대만은 소프트볼의 라이셩룽. 싱가포르는 귀화 탁구선수 리자웨이. 요르단도 여자탁구의 제이나 샤반을 각각 기수로 선정했다. 멕시코는 여자 다이빙의 파올라 에스피노사. UAE는 태권도의 셰이카 마이타 무하마드 라시드 알막툼 공주가 국기를 들었다.

◆ 정치적 고려도 있다 = 미국은 뜻밖에 아프리카 수단 다르푸르의 난민 출신 로페스 로몽을 기수로 선정했다. 미국 육상 1500m 대표인 그는 6세이던 1991년 무장한 수단 지역민병대에 끌려간 뒤 소년병 양성소를 탈출해 케냐 난민캠프에서 생활했던 이색 경력의 선수다. 미국이 로몽을 선택한 것은 ‘평화의 메신저’라는 명분과 함께 중국을 의식한 것이기도 하다. 중국은 다르푸르에 무기를 판매해 종족 학살을 부추기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을 받고 있다.

◆ 편견 날린 사회적인 배려 = 왼쪽 다리가 없는 장애를 극복하고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 ‘인간승리’ 드라마를 연출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자 수영대표팀의 나탈리 뒤 투아(24)가 선수단 기수로 뽑혔다. 하제라 카지 남아공 선수단장은 8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한 대표팀 선수들이 모두 뒤 투아를 기수로 뽑자는 데 동감했다”며 “남아공 선수단을 위한 확실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여자 마라톤 수영 10㎞에 도전하는 뒤 투아는 7년 전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었지만 수영으로 장애를 극복해 당당히 베이징 무대에 나서면서 전 세계 스포츠팬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베이징 = 올림픽특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