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 개시 10년 만에 초유의 남측 민간인 피격 사망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북한은 남측의 진상조사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오히려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면서 책임을 떠넘기면서 사과를 요구하는 역공을 펴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 진상조사단 거부 ‘강경 대응’= 북한은 사건 발생 하루 만인 12일 금강산 관광의 북측 관리당국인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박왕자(여·53)씨 사망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면서 책임을 떠넘겼다. 북한은 이어 담화에서 “남측 당국이 일방적으로 금강산 관광을 잠정중단하도록 한 것은 우리에 대한 도전”이라면서 “남측이 조사를 위해 우리측 지역에 들어오겠다고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허용할 수 없다”고 남측의 진상조사단 요구를 일축했다.

또 북한은 “우리는 남측이 이번 사건에 대해 올바로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울 때까지 남측 관광객을 받지 않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면서 오히려 남측의 요구를 되받아쳤다.

북한은 13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삼으면서 한발짝 더 ‘강경’으로 나아갔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이 대통령의 18대 국회 개원 시정연설에서 밝힌 전향적인 남북관계 발언에 대해 “가소로운 잔꾀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북한은 12일 현지조사단 수용을 촉구하는 남측의 전화통지문을 수신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등 ‘대화’를 끊고 있다.

◆국제정세 급변 속 유·불리 계산한 듯 = 북한이 이처럼 ‘적반하장’에 가까운 강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남한과의 대결국면에서 북한에 불리할 게 없다는 계산이 끝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12일 끝난 북핵 6자회담에서 오는 10월말까지 남한과 미국 등 4개국이 북한에 에너지를 지원키로 한데다, 미국이 북한에 지원하기로 한 식량 50만t 중 일부가 이미 북한에 도착한 상태다. 최근 북·미관계가 급속히 풀리는 관계에서 예년만큼이나 남한에 기댈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 지난해 2038만달러를 가져다준 금강산관광 사업 중단까지 각오할 정도로 강경하게 나오게 하는 이유다.

또 남한의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 등으로 지지도가 악화된 추락한 상태이고, 남북관계가 악화될 경우 대북정책 자체에 대한 논란이 격화되면 수세에 몰린 쪽은 남한 정부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대내적으로도 이번 사건의 주체가 군이라는 점에서 ‘선군정치’를 내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의 사기를 고려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북한은 현재 미국과의 관계를 포함한 대외관계 개선을 중심으로 살길을 모색하는 과정”이라면서 “대남 강경기조가 가져다줄 유불리를 이미 계산했을 것으로, 남한과는 가능할 때까지 최대한 각을 세우려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신보영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