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과 불이 빚은 玉의 살갗

이미지 크게보기600년만의 요출 국내 유일의 관요인 강진청자박물관의 강진요 화목가마에서 윤순학(오른쪽 두 번째) 박물관장과 윤태영 연구개발실장이 요출된 청자들을 감정하고 있다. 전남 강진은 500여년 동안 청자 문화를 꽃피운 고려청자의 본향이다.

우리나라 최남단 전남 강진은 다양한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어 ‘남도답사 1번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약용이 목민심서 등 방대한 저서를 집필했던 다산초당을 비롯, 남도의 색깔을 담아 주옥같은 시를 써낸 영랑 김윤식의 생가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강진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단연코 천년비색의 고려청자다.

고려청자의 백미는 색깔에 있다. 물론 섬세한 문양과 세련된 조형미를 갖추었을 때 최고의 청자가 탄생되지만 신비함과 우아함을 발산하는 고려청자의 비색(翡色)은 도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조차 천하제일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고려청자의 색이 동양인들이 가장 신비스러운 보석으로 생각하는 옥의 진짜 색깔과 같다고 해 비색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시대 이규보는 녹색 청자잔의 완성미에 대해 ‘마치 하늘의 조화를 빌린 것’이라고 했다. 또한 고려청자의 영롱한 빛과 색에 감탄하며 이렇게 노래했다.

어른거림은 푸른 옥의 빛이요

영롱함은 수정의 모습이라

치밀한 옥은 살결과 같아

손을 대면 옥 살갗을 만지는 것과 같다.

고려시대 강진은 왕실에 청자를 생산하여 납품하는 <관요>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강진군의 대구면과 칠량면 일대에서는 188개의 고려청자 가마터가 발견됐다. 국내 최대의 청자도요지임을 알 수 있는 증거다.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500여 년 동안 청자문화를 꽃피운 그야말로 ‘고려청자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8일 국내 유일의 관요인 강진청자박물관(관장 윤순학)에서는 화목(火木)가마에서 구워낸 청자의 요출행사가 열렸다. 이날은 31년 전인 1977년 강진군에서 처음으로 600여 년 간 맥이 끊겨 있던 청자를 재현하기 위해 첫 삽을 뜬 날이다. 옛 고려시대 청자가마 형태와 똑같은 구조 즉, 자연경사면을 이용한 반지하식의 오름가마를 축조해 청자를 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강진요의 제2호 화목가마에서는 도공의 혼과 소나무 장작의 불꽃이 만나 천년의 빛을 머금은 신비의 고려청자를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국보 제68호를 재현한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비롯해 청자칠보투각향로, 청자죽순형주자, 청자사자유개향로 등 모두 11종 78점의 청자를 요출했다.

이를 위해 18명의 강진 관요 도공들은 지난 4일부터 40시간 동안 땀을 흘리며 불을 지폈고 또 열흘이 넘도록 가마의 열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이처럼 온갖 정성을 들인 결과 65%에 가까운 고려청자의 완성품이 쏟아져 나왔다. 평소 30% 내외의 성공률에 비하면 매우 높은 것으로 요출을 지켜보던 도공들은 모두들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천년 전통의 화목가마에서 요출한 신비의 청자들은 청자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즉석에서 공개 경매도 실시했다.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찾아 온 관광객들은 청자 특유의 색깔과 빛에 매료되었는가 하면 청자박물관의 윤태영 연구개발실장이 본벌 요출 시 미완성의 청자를 골라 곧바로 쇠망치로 깨버리자 안타까운 탄식을 자아내기도 했다.

강진에서 구워낸 고려청자에는 생동감과 에너지가 넘쳐나 있다. 그렇기에 강진요의 도공들은 오늘도 고려청자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오묘한 고려청자의 황홀한 비색을 만들어내는 것이 도공들의 영원한 숙제이고 꿈이다. 장인으로서 그들의 눈빛과 손놀림과 혼에서 그 꿈들이 거의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사진·글 = moonpark@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최고 도예가 감별 고려청자 조각부문에서 최고의 도예가로 손꼽히는 조유복씨가 강진요의 제2호 화목가마에서 신비의 빛을 발산하며 구워져 나온 청자들을 갑발에서 꺼내 살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