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에서만 사업을 하는 중국 국영 이동통신사를 제외하면) 다국적 이동통신사 가운데 가입자 수 기준으로 이제 세계 2위에 올라섰습니다.” 지난 3일 오전 싱가포르 엑시터로드 싱텔(Singtel) 본사에서 만난 기안 순 림(Kian Soon Lim·42) 북아시아 총괄 본부장은 싱텔의 글로벌 위상을 묻는 질문에 이처럼 밝혔다. 순간 그의 표정에 강한 자신감이 묻어 났다.

서울보다 약간 큰 685.4㎢ 면적에, 인구 수는 450만여명에 불과한 동남아의 소국(小國) 싱가포르. 그러나 이곳의 대표 이동통신 업체인 싱텔은 소국을 벗어나 해외로 영토를 과감하게 넓히면서 이제는 거대 이동통신사로 다시 태워나고 있었다. 림 본부장은 “우리가 보유한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올 3월 결산 기준으로 1억8500만명”이라며 “지난 1년동안 무려 50%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만 해도 글로벌 이동통신 업체로선 세계 2위였던 스페인 텔레포니카가 올 3월 결산 기준으로 밝힌 자사의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1억7170만명. 텔레포니카가 가입자 수를 1년새 16% 늘리는 동안에 싱텔은 그보다 3배 이상의 속도로 늘려 텔레포니카를 따라잡은 것이다. 1위인 영국 보다폰의 가입자 수는 올 3월 기준으로 2억6000만명. 하지만 보다폰의 가입자 증가율은 싱텔의 절반 수준인 26%여서 보다폰 역시 더이상 세계 1위 수성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림 본부장은 “1997년만 해도 국내 매출비중이 90%였으나 현재는 23%에 불과하다”며 “나머지는 해외에서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삼성전자 동남아총괄의 김정욱(44) 상무(마케팅총괄)는 “싱텔은 2004년 아태 지역의 10여 이통동신 업체들이 결성한 연합체인 모바일 얼라이언스의 주도권을 쥘만큼 세계화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싱텔이 이처럼 급성장한 직접적인 이유는 9년 전부터 태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호주, 필리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을 중심으로 기회만 생기면 현지 이동통신사들의 지분을 공격적으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김 상무는 “싱텔은 몸집을 키워 휴대전화를 싸게 사고 이를 무기로 신흥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싱텔이 지분 30.4%를 보유한 인도 1위 이동통신사인 바르티의 경우 지난 1년새 무려 62% 증가한 62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싱텔은 90년대 초반 유럽 투자에도 나섰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인근의 동남아, 인도 등 성장 잠재력이 큰 나라들로 타깃을 바꿔 일명 ‘싱텔벨트’를 확대해 가는 전략을 써오고 있다. 이처럼 아시아를 평정한 싱텔은 새로운 영토를 찾는 데 눈길을 돌리고 있다. 림 본부장은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싱텔의 이같은 성공 뒤엔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숨어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의 이은중(42) 싱가포르센터 소장은 “싱텔의 성공 신화는 비좁은 내수시장을 탈피하기 위한 싱텔의 공격적인 투자와 맞물려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해외 이동통신 시장 진출을 위한 투자는 대체로 자금회수 기간이 긴 데다 기간산업 특성상 현지 정부의 반대 등 리스크가 큰데도 불구하고 싱텔이 지난 10년간 무려 124억달러를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도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싱텔의 최대주주인 테마섹홀딩스는 10조원가량의 자산을 보유한 정부투자기관으로 주로 아시아 지역에 30% 이상을 투자하고 있어 시너지가 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것이라는 점에서 ‘우물안 개구리’에 머물고 있는 국내 통신산업에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싱가포르 = 이관범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