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의 꿈’ 한양길, 선비의 마음은…

이미지 크게보기새재아리랑 공연 문경새재 아리랑 보존회 회원들이 과거길 옆 초가 주막에서 아리랑 공연을 펼치고 있다. 문경새재 과거길 달빛 사랑 여행을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 참가자들은 주막에서 화사한 봄날 아름다운 밤의 향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문경아 새자야 물박달낭구/ 홍두깨 방맹이로 다나가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홍두깨 방맹이는 팔자가 좋아/ 큰애기 손질로 놀아나네 (후렴)
문경아 새자를 넘어갈 제/ 굽이야 굽이굽이가 눈물이 나네 (후렴)

구구절절한 ‘문경새재 아리랑’이 메아리 되어 새재를 넘는다. 주막의 호롱불이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다듬이 방망이의 절묘한 두드림은 숨을 멈추게 한다.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울림이 솔솔 부는 봄바람을 타고 가슴을 적신다. 한참을 지나 다듬이 소리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색소폰이 적막을 깬다. 사람들의 어깨가 들썩인다. 그리고 춤을 춘다.

문경새재는 영남 지역의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넘어야 했던 높고 험준한 고갯길이다. 빼어난 주변 풍경과 함께 역사에 얽힌 유적과 전설을 간직한 이곳에서 ‘문경새재 과거(科擧)길 달빛 사랑 여행’이 한창이다. 전국에서 가족 단위로 또는 연인들이 찾아와 옛 정취와 향기를 마음껏 즐기며 진달래꽃 활짝 핀 봄밤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번 여행은 ‘문경새재’, ‘과거’, ‘길’, ‘달빛’, ‘사랑’, ‘여행’이라는 주제로 여러 가지 소재들을 통해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관문 들어서기, 과거시험 보기, 옛 복식 입어보기, 업어주기, 사랑의 묘약 동동주 먹어보기, 사색하며 걷기, 잔치마당 공연 보기 등 시간이 깊어감에 따라 행사에 흠뻑 빠지도록 했다.

주먹밥으로 입맛을 다신 참가자들은 문화유산 해설사를 따라 자연생태공원에서 첫 여행을 시작했다. 노루귀, 금낭화, 할미꽃 등 들꽃을 감상하고 징검다리를 건너며 아련한 추억으로 한껏 즐거운 표정들이다. 소원지에 각자의 소원을 적은 뒤 장승 앞 나무에 매달아 놓고 문경의 제1관문을 향하며 본격적인 과거길 여행에 들어섰다.

임진왜란 이후 세워진 주흘관을 지나 얼마쯤 걸어 올라가자 최근에 문을 연 대규모 사극 세트장이 눈길을 끌었다. KBS의 ‘대왕세종’ 촬영장인데 우선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모두 135동의 건물로 광화문, 근정문, 교태전 등 왕궁과 양반촌, 초가촌이 조선시대 건축양식 그대로 건립되어 있다.

장원급제길은 옛길 그대로다. 흙길을 따라 구두와 양말을 벗은 채 맨발로 걷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부모는 자녀들의 손을 꼭 잡고 과거를 보러 가는 가난한 선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문경의 예전 지명인 ‘문희’에서 드러나듯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의미를 지닌 과거길은 걸어보는 것만 해도 마치 장원급제한 듯 뿌듯한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오늘날의 여관과 같은 구실을 했던 원터에는 문경 특산인 동동주와 도토리묵이 허기진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깊은 산속에서 맹수와 도적을 피하고 지친 심신을 달래며 하루 저녁 묵을 수 있었던 조령 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해 주었던 공익시설이었다고 한다.

신구관찰사의 임무교대를 위해 세워진 교귀정과 예로부터 시인이나 묵객이 즐겨 찾았다는 용추를 둘러본 참가자들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초가 주막. 이 주막은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길에 오르던 선비들, 거부의 꿈을 안고 전국을 누비던 상인들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새재길을 오르다 한잔의 술로 여독을 풀며 정분을 나누며 쉬어갔던 곳이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주막에서의 멋들어진 잔치마당은 ‘문경새재 과거길 달빛 사랑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해마다 이 여행에 동참했다는 백기수(39 대구)씨는 “우리 조상들의 얼과 혼이 서려 있는 문경새재길은 아이들의 교육에도 더 없이 좋다”며 “앞으로도 계속 가족들과 함께 참석하겠다”고 했다. 이 행사는 오는 10월11일까지 격주로 노는 토요일에 열리며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 참가신청 054-555-2571

사진·글 = moonpark@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과거보러 가자” 대구에서 온 백주연(9), 주환(6) 남매가 선비복장을 한 뒤 옛 과거길을 걸으며 조상들의 정신을 체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