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깃털 모양 금장식 절풍모를 쓰고/ 흰빛 무용신을 신은 채 망설이는 듯하다가/삽시에 팔을 저으며 훨훨 춤을 추니/새처럼 나래 펼치며 요동에서 날아왔구나’ 당나라의 시인 이백이 당의 궁중에서 펼쳐진 고구려 춤을 보고 지은 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고구려인들은 소매춤을 즐겼다. 사진은 고구려 벽화 무용총 무용도의 일부.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것 중의 하나는 ‘음주가무(飮酒歌舞)’ 문화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모였다 하면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이는 각종 불건전한 소비·유흥문화를 야기한 탓에 ‘부끄러운 자화상’으로서 늘 반성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에 대해 한국학자들은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정(情)을 나누고 싶어하는 한국인의 전통적 기질”이라며 “불건전한 행태는 개선하되, 신명나는 굿판에서처럼 일체감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는 에너지로 긍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소장 역사학자들도 “한국인들은 고대로부터 춤과 노래를 즐겨왔으며,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성악가를 배출하거나 ‘한류(韓流)’ 등을 창출한 근원적인 힘이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노래와 춤으로 하늘과 통하는 신명=‘한국인들이 노래나 춤, 음주를 좋아하고 그것도 신바람이 나서 카오스 상태까지 치닫는 것은 무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무교의 핵심은 바로 노래와 춤이다. 신령이 내려오길 기원하고 신이 오르면 또 노래와 춤으로 신령을 즐겁게 하고 신령을 보낼 때도 노래와 춤으로 한다.’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철학자 김용옥씨도 부여와 고구려 등 고대국가 사람들이 ‘하느님 굿’, 즉 제천(祭天)의식으로서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점을 설명한 적이 있다. 중국 역사책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은 동이(東夷)의 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에 ‘며칠을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밥 먹고 노래 부르고 춤춘다(連日飮食歌舞)’고 기술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중국 사가들에게 이러한 모습이 생동력 있고 원초적 모습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한민족의 특징으로 기록했던 것”이라고 풀이했다.

삼국시대 화랑도·풍류도와 고려시대 연등회·팔관회 등은 종교 행사였으나, 내용면에서는 음주가무를 포함한 옛 제천의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조흥윤 한양대 국제문화대학장은 저서 ‘한국문화론’에서 “무(巫)와 불교를 억압한 조선때 크게 위축됐지만 신명과 음주가무라는 한국인의 민중문화는 면면히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구한말 한반도에 들어왔던 서양인들은 한국의 음주가무 문화를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당시 한국을 여행했던 영국 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저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취해버리는 것은 한국인들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고 적었다.

◆인간을 이어주는 신바람 문화로=“한국과 일본은 이웃나라지만, 음주가무 문화가 크게 다릅니다. 한·일 교육자 교류 때 보면, 한국인들은 첫날부터 술을 함께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어깨동무를 하며 춤을 춰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사에 거리를 두려 하는 일본 사람들은 처음에 무척 당혹스럽게 여기지만, 서로 술로 뭉개지고 어깨를 겯고 손을 맞잡고 나면 한국인의 진솔한 정(情)에 홀딱 반하는 경우가 많지요.”

고길희 일본 야마가타대 교수(교육학)는 우리 음주가무 문화의 긍정적 측면을 ‘정(情) 나누기’로 봤다. 한국인이 술과 노래, 춤을 다른 사람과 더불어 즐기는 것은 흥이 많고, 또 정이 넘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람들은 경쟁사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유흥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측면도 있는 듯하다”며 “음주가무를 적절히 즐기며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하는 문화가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본사와 공장을 둘러본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MBA) 학생들은 “한국 근로자들이 저녁에 회식을 자주 하고 노래방에서 함께 노래도 불러 유대감이 끈끈하더라”며 “이것이 한국 기업의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소감을 내놨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 인터넷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의 네트워크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에 한국 기업 조직이 회식(會食) 문화를 긍정적으로 살려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인호 한국미래학연구원장은 “한국인 특유의 신명과 흥이 21세기 문화국가를 여는 데 큰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최근 국가 전체적으로 기(氣)가 꺾인 듯한 느낌이기 때문에 겨레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정신운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물질 만능, 소비 지향 사회로 흐르지 않기 위해선 각 개인들이 묵상, 아침청소, 일기 쓰기 등 작은 실천을 통한 마음 수련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