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 설치된 무인 유료 화장실. 주변에는 쓰레기가 쌓여 있고 내부는 오·폐물로 더러워져 있는 등 관리가 안 된 채 방치되어 있다. 박준희기자

서울 종로의 한 영어학원 강사로 있는 호주인 크리스(41)는 지난 17일 오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정문 앞에 설치돼 있는 무인 유료 화장실을 이용하려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100원을 내고 들어간 화장실 변기 안에는 악취와 함께 배설물과 오물이 가득했다. 화장지도 없었고 내부에는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었다. 항의를 위해 화장실에 붙어 있는 상담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아예 응답이 없었다. 크리스는 “관리도 못할 거면서 이런 시설을 왜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한국에는 보여주기만을 위한 시설이 많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도시의 흉물, 무인 유료 화장실 = 무인 유료 화장실은 서울시가 지난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외국인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다며 설치를 시작했다. 무인 유료 화장실은 2008년 3월 현재 서울 광화문, 종로, 청계천, 인사동 등에 54개가 있다. 이용료는 100원으로 관리 운영비 등에 쓰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인 유료 화장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도시의 흉물로 변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앞 무인 유료 화장실은 일주일째 제대로 청소가 되지 않아 각종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차있었다. 광화문 KT 앞 화장실은 문이 제대로 잠기지 않는가 하면 동대문시장에 설치된 화장실은 아예 문이 열리지 않았다.

서울 인사동 입구에 있는 무인 유료 화장실은 잦은 고장으로 이용객이 없어 방치된 상태였다. 인사동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최모(48)씨는 “취객들이 밤마다 화장실 시설을 발로 차서 고장이 자주 나니까 이제는 관리도 안 하는 것 같다”며 “외국인들이 이용하려 하면 근처 무료 화장실을 알려준다”고 귀띔했다.

◆관리 손 놓은 지방자치단체 = 이처럼 무인 유료 화장실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것은 관리업체가 이용객 감소에 따른 적자를 이유로 운영을 포기했기 때문. 실제로 무인 유료 화장실은 서울시내 대형건물들이 화장실을 무료로 개방하고 지하철 화장실 환경이 개선되면서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바뀌었다. 특히 공중화장실 주변이나 지하철 역 옆에 상당수(31개)를 설치하는 등 관계당국의 잘못된 위치 선정도 이용객 감소를 부추겼다. 위탁 관리업체인 B사 관계자는 “이용객이 없다보니 동전수입은 월 400만원 정도인데 청소비, 휴지비, 전구 교체 등 유지관리비가 월 1000만원씩 들어간다”며 “적자가 너무 심각해 이달 초에 서울시와 각 구청에 운영포기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서울시 등도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서울시 위생과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B사와 계약을 연장할지 만료하고 철거할지 결정된 것이 없다”면서 “다만 철거는 비용이 많이 들어 개방형 화장실로 유도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손재권·박준희기자 gjac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