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세계적인 비보이팀 ‘T.I.P’가 지난 1월31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연습실에서 춤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김동훈기자

지난 1월31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주택가. 낡은 건물의 지하계단을 내려가자 주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가 펼쳐졌다. 미국 뉴욕 할렘가의 낙서벽을 연상케 하는 그림판을 뒤로한 채 20여명의 젊은이들이 춤 동작에 몰입해 있었다. 이들은 석달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 4대 비보이 대회인 ‘UK 비보이 챔피언십’에서 국내 단일팀으로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T.I.P’ 멤버들. 대회 우승을 기념하는 ‘비보이 사관학교’ 공연을 위해 차가운 바닥의 연습실에서 뜨거운 에너지를 내뿜으면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비보이(B-boy)는 ‘브레이크 댄스 보이’의 약어로 힙합 음악에 맞춰 고난도의 춤 동작을 즉흥적으로 추는 젊은이를 일컫는다.

◆‘다이내믹 코리아’ 알리는 비보이 = 몇년전만 해도 미국 빈민가 청소년들의 흉내나 내는 철없는 애들쯤으로 여겨졌던 비보이. 그러나 이제는 세계 대회 우승을 휩쓸면서 ‘역동적인 한국(다이내믹 코리아)’을 알리는 ‘소프트 파워’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국내 또 다른 비보이팀인 ‘갬블러’. 이 팀은 지난 2006년 12월 종주국 격인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비보이 호다운’ 대회에서 전년도 우승컵을 거머 쥔 미국팀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라 세계 젊은이들을 놀라게 했다. 춤대결 자체를 전투라는 뜻의 ‘배틀(Battle)’로 부르는 것처럼 서로가 숨막히는 기싸움을 벌이는 열전의 한복판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종주국의 콧대를 꺾은 것이다. 갬블러는 세계 4대 비보이 대회를 모두 섭렵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 새로운 콘텐츠의 가능성 제시 =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2006년 10대 히트상품 중 하나로 비보이를 꼽았다. 비보이가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화 코드로 발돋움했으며 단순한 춤을 넘어 새로운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당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공연의 매진 사례가 그 가능성을 예감케 했다. 거리에서 탄생한 비보이가 이제는 공연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해 나가고 있는 셈이다.

국내 최고의 비보이 중 한명으로 꼽히는 하휘동(28·T.I.P) 씨는 “이제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대회의 우승을 휩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국내 비보이들의 기량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하씨도 이런 날이 올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10년전만 해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연습할 곳이 없어 공사중인 빈건물을 찾아 다녀야 했다.

연습할 수 있는 곳만 찾으면 행복해 했던 시절이었다.

◆ 기업들, 비보이 마케팅 ‘열기’= 이처럼 비보이가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부상하자 이를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다름아닌 기업들이었다. 갬블러만 해도 국민은행과 전속계약을 하고 광고모델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또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전야제에도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할 예정이다. LG전자는 지난해 10월 아예 ‘비보이 마케팅’을 위해 오는 2012년까지 총 1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LG전자는 비보이 하면 연상되는 기업 1순위로 떠올랐다. LG전자 관계자는 “비보이의 역동적이고 자유분방하며 열정적인 이미지를 우리의 휴대전화 이미지에 담고 싶었다”며 “단발성이 아닌 중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국내 비보이들을 앞세워 중동 지역의 젊은층을 사로잡기 위한 마케팅을 벌였다. 이외에도 나이키·휠라 등이 비보이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관범기자 frog72@ 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