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동아타워 3층 프로게임단 ‘KTF매직엔스’ 연습장에서 프로게이머들이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경기 전략을 상의하고 있다. 심만수기자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동아타워 3층 프로게임단 ‘KTF매직엔스’ 연습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쪽 벽을 가득 채운 금빛 트로피들이 눈길을 잡아끈다. 그 사이로 헤드셋을 쓴 프로게이머 22명이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분주한 손놀림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다.

이들 22명은 주전 자리를 놓고 말 그대로 ‘소리 없는 전투’를 펼치고 있다. 함성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이들 22명의 눈빛은 그 어느 스포츠 선수보다도 진지하고 열의에 차있었다.

합숙을 하면서 매일 12시간씩 꼬박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 선수는 한국 e스포츠를 이끄는 전사들이다.

지난 1999년 12월 세계 1호 프로게임단이 국내에서 탄생했다. KTF매직엔스의 창단으로 프로게이머 시대가 열렸다.

이들 프로게이머가 활약하는 경기를 이젠 ‘e스포츠’로 통칭한다. e스포츠는 전자게임(electronic game)과 스포츠(sports)의 합성어. 스포츠처럼 개인이나 팀이 온라인 게임 속에서 실력을 겨루는 경기를 일컫는다.

◆ 소프트 파워 과시 = e스포츠가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전 세계에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세계 e스포츠 주요 종목 인 ‘워크래프트3’. 이 게임을 열면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4개 종족이 벌이는 치열한 전투의 팬터지 속으로 빠져 든다. 치밀한 정보전과 전략을 구사해야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지난해 워크래프트 종목에서 최다 상금을 받은 선수 10명 가운데 한국 선수가 무려 절반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특히 1위인 장재호(22) 선수는 지난해 우승상금으로 총 16만8074달러를 벌었다. 2~4위가 받은 상금 총액보다 더 많다.

국내 e스포츠에 대한 세계의 관심도 뜨겁다. CNN·파이낸셜타임스·로이터·NHK 등 해외 언론을 비롯한 영국 컨설팅 기업 등이 e스포츠 종주국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지난해만 해도 20여차례나 다녀갔다. 김신배(53) 한국e스포츠협회 회장(SK텔레콤 사장)은 “한국의 e스포츠 모델이 산업적인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 또 다른 감성전쟁 = KTF를 시작으로 삼성전자·SK텔레콤·한빛소프트·CJ·위메이드 등 11개 기업이 프로게임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년 새 프로게임단을 운영하는 기업 수는 두배로 늘어났다.

SK텔레콤(게임단 T1), KTF, CJ(엔투스)는 연간 130억∼150여억원의 홍보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간 운영비 20억원에 비하면 무려 6배 이상의 투자대비효과를 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KTF 관계자는 “우리 소속 선수 팬클럽 회원 수만 해도 40만여명에 이른다”며 “e스포츠의 주된 팬층은 1030세대여서 젊은 층과 친밀감을 쌓고 교감을 나누는 수단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 다가오는 도전 = 그러나 독일·미국·중국 등의 도전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종주국의 위상이 위협받고 있다.

우리나라를 본떠 지난해 생긴 미국 프로게임리그 ‘CGS’는 거대 미디어·자본 등과 결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1억 가구 이상을 대상으로 한 중계 체제를 구축했다. 독일e스포츠협회는 케이블·인터넷 TV를 두루 보유한 기가TV와 손잡고 ‘ESL’을 유럽최대리그로 키우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CEG를 대표 리그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e스포츠협회는 올해부터 e스포츠 국제기구 창설을 위한 기반을 만들 계획이어서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업계 전문가는 “우리나라가 종주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선 주도적으로 국제협의체를 조직하는 동시에 경기종목 등의 국제 표준을 정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관범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