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 20세기 초반에 걸쳐 서양에서 생산된 아시아 고지도를 모은 자료집이 최근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서 발간됐다. 110여 쪽에 달하는 이 책에는 주로 17~18세기 서양이 제작했던 아시아 지도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고지도 50점이 수록돼 있다. 책의 제목은 ‘서양 고지도를 통해 본 한국(Korea in Old Western Maps)’.

일단 책에 얽힌 이야기부터 해보자. 이 책은 최양식 행정자치부 차관과 김권구 계명대 교수가 1996~97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중앙도서관에서 수집한 결과물을 모은 것이다. 1996년 주영한국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했던 최 차관은 정책연구 과제인 ‘한국 관련 서양 고지도 찾기’를 수행하기 위해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고지도 수집을 시작했다. 같은해 12월, 당시 문화체육부 연구관으로 영국에 연수 중이던 김 교수가 이에 동참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1997년 1월부터 약 10개월 동안 케임브리지대에 소장돼 있는 고지도와 문헌을 조사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두 사람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도 원본 등 모두 411건·419점을 발굴하는 성과를 이뤘다. 1997년 12월 최 차관과 김 교수는 수집한 서양 고지도와 관련 자료를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에 제공했다. 이를 분석, 편찬해 거의 10년 만에 빛을 보게 된 책이 바로 ‘서양 고지도를 통해 본 한국’이다. 한마디로, 책은 두 사람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자료들을 총망라한 것이다.

왜 눈물이 배어 있냐고? 땀은 이해하겠는데 눈물까지는 잘 모르겠다는 이는 책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짐작건대, 이 같은 자료 한 점을 입수할 때마다 두 사람은 혹은 감격의 눈물을, 혹은 통탄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라고 짐작되기 때문이다.

책에 수록된 지도는 당시 한반도의 위치를 그야말로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간도 등 만주지역 일부가 조선의 영토로 그려져 있는가하면 동해(East Sea, Oriental Sea, Sea of Corea 등)의 선명한 표기, 독도의 조선 영토 명기 등 오늘날 문제되고 있는 영토 관련 사항들이 분명하게 정리돼 있다. 어찌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겠는가.

책의 해설을 맡은 서정철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고지도는 타국에 대한 당대의 지식을 모두 활용해서 제작한 인식의 결정체”라면서 “이러한 점에서 서양 고지도에 나타난 한국 관련 표기는 상당히 중요하며, 우리나라의 국호, 동해에 대한 명칭, 독도, 북방영토 등의 문제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지도들을 검토해 보면, 압록강의 본류를 반분해 국경선을 정한 것이 아니라 압록강 본류의 북쪽에서 압록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들의 꼭지점을 이은 선이 국경선으로 돼 있다”며 “이는 당시 만주의 남부지역까지가 한국의 영토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책의 한 대목. 49쪽에 소개돼 있는 지도는 1782년 제작된 것이다. 만리장성의 모습도 뚜렷하게 표시돼 있는 이 지도엔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에 조·청의 국경선이 그려져 있다. 동해는 ‘Sea of Corea(한국해)’로 표기돼 있고, 조선 8도의 지명과 더불어 행정구역의 경계까지 표시돼 있다. 이렇게 상세한 지도가 이미 220여년 전 서양에서 제작됐던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독도는 우리땅, 만주도 우리땅, 대마도도 양보 못한다’일까. 그렇진 않을 게다. 300여년 전부터 머나먼 극동의 지리까지 알려고 했던 유럽인들의 탐구심과 개척 정신이 아닐까. 물론 그들의 탐험 욕구 이면에 숨겨져 있는 식민주의적 욕심까지 눈감아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김영번 / 문화부 차장]]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