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한국인 23명이 납치된 아프가니스탄은 외지인에게 쉽사리 정복되지 않는 땅이다. 한때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1세와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진출을 위해 가로질렀던 이 척박한 땅에서 19세기 이후 영국과 옛 소련도 분루를 삼켰다.

인구 3188만명의 42%를 차지하는 최대 부족 ‘파슈툰의 땅’이라는 의미의 ‘아프가니스탄’은 지금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 탈레반과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의 근거지가 됐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최초의 문명전’이라고 평가했던 1979년 소련의 침공과 실패 이후 아프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왜 아프간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온상이 됐을까. 뿌리없는 갈등은 없다. 오늘날 폭탄테러와 인질 납치로 점철된 아프간은 식민과 냉전이라는 세계체제가 빚어낸 부산물이다. 또한 이란과 파키스탄, 중국과 접경하고 있는 아프간의 상황은 동아시아에서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가늠하는 거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 아프간은 누구의 땅인가

64만7500㎢ 크기의 아프간에서는 기원전 2000~1200년 인도-유럽어족이 이동하면서 정착지가 형성됐다. 이후 거듭된 침략과 재정복을 통해 인근 우즈베키스탄과 이란, 인도에서 인구가 유입되면서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파슈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아프간이라는 표현은 1504년 현 수도 카불에 무굴제국을 건설한 몽골 티무르의 5대손 바부르가 파슈툰족을 지칭하면서 유래했다. 현재 아프간 인구의 42%가 파슈툰어를 사용하는 파슈툰족으로, 이번에 한국인 23명을 납치한 탈레반의 주축이다. 또 북부의 우즈베크족, 이란계 하라자족, 남부의 인도계 발루치족, 동부의 타지크족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2. 알렉산더·칭기즈칸도 다녀갔다는데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330년 인도 정복을 위해 아프간 지역을 거쳐갔다. 아프간이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사만 왕조, 가즈니 왕조도 아프간을 정복했으며, 1219년에는 몽골의 칭기즈칸이 아프간 지역에 발을 디뎠다. 인도 북부와 아프간 지역에 무굴 제국을 건설한 바부르는 카불에 제국의 수도를 건설했을 정도다. 아프간의 최절정기는 1709년 4월21일 파슈툰 출신의 미르와이스 칸 호타크가 사파비 왕조의 구르긴 칸을 살해한 뒤 페르시아 수도 이스파한을 점령했을 때로, 사실상 근대적 개념의 국가가 이때 탄생했다.

3. 정복되지 않는 땅으로 유명한데

아프간은 19세기 이후 서방 강대국의 침략에 쉽게 굴복하지 않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당시 맹위를 떨치던 영국은 인도에 이어 전략적 요충지인 아프간의 점령을 시도했지만 1839~1841년과 1878~1880년, 1919년 세차례의 영국-아프간 전쟁에서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고, 결국 1919년 아프간 독립을 승인했다. 20세기에는 옛 소련이 희생자로 이름을 올렸다. 소련은 1979년 반소련 정책을 취한 하피줄라 아민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민을 처형한 뒤 바브라크 카르말 정권을 지원했는데, 반소련 저항운동 때문에 9년간 전쟁을 치렀고 결국에는 철수했다.

4. 강대국 소련도 전쟁서 패한 이유는

소련의 확대를 경계하던 미국의 지원 때문이다. 미국은 주로 파슈툰족으로 구성된 무자헤딘(이슬람 전사) 세력에게 미사일 제공 등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주요 루트는 중동의 친미국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이었다. 실제로 사우디는 1984~1986년에 아프간 반군에게 총 5억2500만달러를 지원했고, 파키스탄 육해공 정보국은 요르단에 집결한 아랍 의용군의 훈련을 도맡았다. 사우디 출신의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당시 미국의 요청을 받은 사우디 왕가의 지원을 업고 아프간 반군에 참가한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5. 승전뒤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했나

전혀 그렇지 못했다. 미국의 반군 지원은 예상외의 부작용을 낳았는데, 바로 전세계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단합하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헌팅턴은 이 전쟁을 “민족주의나 사회주의 원칙에 바탕을 두지 않고 외세를 이겨낸 최초 사례로, 지하드(성전)로 집약되는 이슬람의 대의가 더욱 힘을 얻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992년 모하마드 나지불라 대통령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입각한 무장세력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사임했고, 이후에는 이슬람 세력간 치열한 권력투쟁이 시작됐다. 이 와중에 1994년 급부상한 것이 바로 한국인 인질 23명을 납치한 탈레반으로, 파슈툰족 무자헤딘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6. 탈레반 통치는 많은 논란 낳았는데

1996년 수도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다. 여성에 대한 교육과 사회활동을 금지하고, 공공장소에서는 눈을 제외한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하도록 명령한 것으로 악명 높다. TV 금지와 신체 절단형 형벌을 부활시키기도 했다. 1994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와 헬맨드 등을 거점으로 성립된 탈레반은 수니파 이슬람 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된 조직으로, 2001년 3월 탱크와 로켓을 동원, 세계적 유적인 바미얀 석불을 파괴하면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탈레반은 결국 2001년 10월 미국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7. 미국이 아프간 침공한 이유는

2001년 9·11 테러가 직접적 계기를 제공했다. 9·11 테러를 자행한 알카에다 근거지가 바로 아프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 미국은 아프간에 빈 라덴의 인도를 요구했으나, 탈레반 정부는 거부했고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대대적 군사 공격을 개시했다. 미국은 이후 2002년 6월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취임한 하미드 카르자이 현 대통령을 지지했고, 지난해 7월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군사작전권을 이양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프간과 파키스탄 계곡 사이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빈 라덴 체포에는 실패했다.

8. 인질 사태는 왜 발생했나

문제는 탈레반이 실각 이후에도 남부 칸다하르 등을 중심으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의 군사공격은 전세계 무슬림의 공분을 사고 있으며, 이같은 지지를 바탕으로 탈레반과 알카에다는 지난해부터 다시 세력을 회복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프간에서 숨진 다국적군 사망자는 640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미군은 탈레반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번 인질 사건도 탈레반이 미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마련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9. 현재 경제상황은 어떤가

오랜 전쟁은 높은 힌두 쿠시 산맥과 척박한 자연환경을 가진 아프간인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2006년 국내총생산 규모는 324억달러 규모로 세계 92위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1490달러로 하위권인 158위에 머물고 있다. 실업률도 40%에 달할 정도로 높고, 물가상승률은 자그마치 16.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업의 80%가 농업이다. 아편의 재료인 양귀비 재배가 미국의 아프간 침공이후 잠시 주춤했으나, 최근들어 경제난을 이유로 또다시 급증하는 추세다. 수천명의 난민들은 아직도 인접국 이란에 머물고 있으며, 언제 돌아갈지 기약할 수 없는 실정이다.

10. 아프간에 미래는 없는가

속단할 수는 없지만, 당분간 장밋빛 희망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일단 정치적 안정을 찾는 게 급선무인 상황이지만, 미국의 지지를 받는 카르자이 대통령의 입지는 상당히 불안하며 탈레반의 저항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희망을 잃은 아프간인들이 더욱 종교인 이슬람에서 안식을 찾을 가능성도 높다. 또한 미국뿐 아니라 중동지역 강대국 이란의 개입, 인접국 파키스탄의 이해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외교적 돌파구를 찾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아프간이 이슬람문명과 서구문명의 격돌 지점이 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지만, 당분간 테러 위험 지대로 남아있을 듯하다.

신보영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