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가 시민들의 쌈짓돈을 모아 산 땅으로 ‘알박기’를 시도한다. 알박기란 각종 개발사업에 편승해 최소 투자로 이익을 챙기는 얌체 행위.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땅이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만 활용될 수 있도록 난개발을 막는 수단으로 알박기를 역이용하는 것이다.

부산 도심에 숲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 2001년 결성된 시민단체 ‘100만평문화공원범시민협의회(이하 협의회)’는 공원 1평 갖기 운동을 통해 월회비 2000원을 내는 풀씨회원을 모집해왔다. 뜻을 같이하는 회원이 어느덧 3500여명으로 늘었고 기금도 수억원이나 모였다. 여기에 은행빚을 보태 부산 강서구 봉림동 서낙동강 유역의 둔치도에 1만3400여평의 공원용 부지를 매입했다. 그리고 부산시에 공원을 조성토록 거듭 촉구했지만 시는 검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적극 나서지 않았다.

협의회가 둔치도 안에 보유하고 있는 8000여평의 땅을 부산시에 무상으로 기증한 뒤엔 부산시도 태도가 달라졌다. 1만5000평을 근린공원으로 지정하고 공원 조성을 위한 예산을 배정하기도 했다. 그래도 100만평 공원 조성이라는 시민들의 꿈은 요원하게만 보였다. 신도시계획 등 각종 개발사업은 급속히 추진되고 있는 반면 부산시의 공원 조성 의지는 여전히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협의회는 보다 강력한 대안을 찾게 됐다. 미래의 공원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시가 6억원에 달하는 3000여평의 토지를 ‘자연환경국민신탁’에 맡기기로 했다. 신탁 예정지는 현재 그린벨트로 묶여 논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주변의 개발압력이 거세지며 지가 상승과 난개발이 예상되는 곳이다. 파괴되는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지난 3월 출범한 특수법인 자연환경국민신탁에 신탁된 토지는 ‘국민신탁법’에 의해 매각·교환 등이 금지돼 난개발로부터 영구히 보전이 가능하다. 협의회는 오는 15일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자연환경국민신탁과 신탁계약 체결식을 한다.

김승환(동아대 교수) 협의회 사무처장은 “난개발로 인해 시민을 위한 녹지 확보 운동이 흐지부지될 상황이었으나 해결책을 찾았다”며 “처분을 불가능하게 하는 토지신탁은 도심 내 공원확보를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희정기자 nivo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