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구름다리된 철로’ 지반침하 사고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가좌역 인근 사고 현장에서 4일 오전 코레일(옛 한국철도공사) 관계자들이 복구상황을 둘러보고 있다. 곽성호기자

경의선 가좌역 부근 지하역사 공사현장에서 지반이 50m나 내려앉는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천우신조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주민들은 “이미 일주일 전부터 붕괴 조짐을 보였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며 당국과 건설업체의 안전불감증을 질타했다. 경찰은 건설회사 안전관리 책임자를 불러 안전조치 이행 여부와 시공상 문제점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으며 업무상과실 등의 혐의가 확인되면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 어이없는 붕괴 사고 = 3일 오후 5시15분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경의선 철도 가좌역 부근 지하역사 공사구간에서 길이 50ｍ, 폭 30ｍ 크기의 지반이 지하 50ｍ 깊이로 내려앉았다. 사고 장소에서는 경의선 복선 전철화 공사 및 가좌역 지하역사 신축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 사고로 가좌역과 수색역 사이 300ｍ 가량에 걸쳐있는 상가 중 일부 건물이 약간 기울어지는 등 붕괴 위험이 있어 38개 상점이 문을 닫았고 상인 20여명이 대피했다. 공사장 인부들은 붕괴되기 약 40분 전 공사장에 설치된 콘크리트 옹벽이 무너지려는 조짐을 보이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발생 16분 전인 오후 4시58분쯤 승객을 실은 서울~문산, 문산~서울행 통근열차가 사고지점인 가좌역 종점을 지나 자칫하면 대형참사가 빚어질 뻔했다.

◆ 예고된 사고 = 가좌역 인근 지역 주민들은 사고 일주일 전부터 창문이 금이 가고 유리창이 떨어지는 등 사고가 이미 예견됐다고 말했다. 오정애(여·46·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씨는 “일주일쯤 전부터 창문이 떨어지고 유리창이 깨져 공사담당자들을 불러서 사진도 찍고 대책을 세워달라고 항의도 했지만 결국 무시했다”고 말했다. 오씨는 “지반이 붕괴할 수 있으나 대피령도 없었고 공사 관계자들이 112 신고도 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해 공사 현장이 사고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김장원(48)씨도 “전에는 어지간한 차가 지나가도 땅이 안 흔들렸는데 2달전부터 발파공사 시작하고 나서는 버스만 지나가도 땅이 흔들렸다”며 “가족들은 불안하다고 더이상 여기서 못 살겠다고 할 정도”라고 강조했다.

◆ 시민들 출근길 불편 = 이날 사고로 인해 행신역에서 출발하는 KTX 열차의 운행이 중단되고 문산역에서 출발하는 통근열차도 수색역까지로 운행이 제한됐다. 이에 따라 4일 오전 시민들은 출근길에 큰 불편을 겪었다. 서울역까지 오는 시민들은 대곡역에서 지하철 3호선으로, 수색역에서 지하철 6호선으로 갈아타고 도심에 들어왔고 행신역에서 KTX 열차를 타려던 승객들은 철도공사 등이 강매역에서 KTX 출발시간에 맞춰 운영한 셔틀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김상윤(33·회사원·고양시 일산구 일산동)씨는 “수색역까지 운행하는 것을 몰라 지각하게 생겼다”며 “환승이 불편해서 평소보다 출근시간이 30분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 열차의 수색 차량기지 입출고가 중단됨에 따라 서울역 경부선과 용산역 호남선의 새마을호·무궁화호 출발도 15~30분씩 지연됐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어제 사고로 수색 차량기지에 있는 열차들의 발이 묶이게 되면서 사고 발생전 운행하던 열차들로만 반복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기차의 출발이 늦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 경찰 수사 = 수사에 착수한 서울 마포경찰서는 사고 당일 공사장에서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업무상 과실은 없었는지, 근처 지하철역 공사장에서 시공상 문제는 없었는지를 집중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4일 중 가좌역장을 소환해 피해경위를 살펴본 뒤 도급회사, 하도급회사, 감리회사, 설계회사의 관계자들을 조사해 업무상과실, 건설산업기본법, 건설기술관리법 위반 등 혐의가 확인되면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경찰은 일단 쌍용건설의 안전관리 책임자를 상대로 “철기둥(H빔)을 보강하는 연결선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끊어져 사고가 일어났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공사관련 장부를 제출받아 검토하고 있다.

손재권·김병채·민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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