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의선 가좌역에서 발생한 선로침하 사고는 300명의 목숨을 하늘에 맡긴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또다시 드러냈다. 건설회사가 철로를 받치는 지반이 쓸려 내려갈 가능성을 확인한 뒤에도 철도당국에 연락하지 않아 승객을 태운 열차를 그대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사고 2분 전까지 열차 운행 = 가좌~수색역 사이 선로가 유실된 것은 3일 오후 5시14분. 관련 규정에 따라 공사현장에 상주하는 안전감시 요원은 40여분 전인 오후 4시30분쯤 이미 옹벽 붕괴 조짐을 발견해 공사장 장비를 옮기고 인부들을 모두 대피시켰다.

그렇지만 열차에 대해서는 서행하라는 보고만 이뤄졌고 사고 발생 16분 전인 오후 4시58분에 서울~문산행 2023호, 문산~서울행 2026호 5량짜리 통근열차가 사고지점을 교차해 지나갔다. 두 열차에는 300여명이 타고 있었다. 열차가 조금만 늦게 통과했다면 열차가 지하 35m 깊이의 구덩이에 빠지면서 78명이 숨졌던 1993년 구포열차 사고가 재연될 뻔했다.

가좌역장이 수색역을 떠나 가좌역으로 향하던 용산~목포행 무궁화호 1061호 열차를 손을 들어 정지시킨 것은 선로 침하 직전이었다. 가좌역측도 안전감시 요원이 “열차가 들어오면 안 된다”고 상황을 재보고하기 전까지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지하 공사장 옹벽과 선로의 거리가 좀 있고 선로 지반은 원래 단단하게 다져져 있기 때문에 선로가 유실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며 “하늘이 도왔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사고와 솜방망이 처벌 = 놀라운 사실은 사고 며칠 전부터 인근 건물이 균열되고 기우는 등 징조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날 시공사인 S건설과 H토건 등에서 사고 40여분 전 인부들을 대피시켜 대형 참사를 면하기는 했지만 이번 사건은 1993년 3월28일 발생한 구포역 열차전복 사고와 유사하다. 당시 640명을 태운 채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117호 무궁화호 열차는 오후 5시30분쯤 시속 85㎞로 구포역 쪽에 진입하다 탈선하면서 기관차 등 4량이 전복됐다. 전력구 설치를 위해 지하 굴착공사를 벌이던 건설사가 지반강화 조치 등 제대로 된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지반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이 사고로 78명이 숨지고 176명이 다쳤지만 처벌은 가벼웠다. 1994년 5월 대법원은 해당 건설사 대표 등 6명에 대해 사고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며 검찰측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확정했다. 이런 끔찍한 사고가 발생해도 교훈으로 삼지 못하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기 때문에 같은 사고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홍주의기자 impr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