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소설 인기가 상종가다. 이는 소재의 일상성에 기인한 것 같다. 우선 접근이 편하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로 읽힌다. 그러나 그 안에 끄집어내는 이야기는 결코 일상적이지 않다. 일상이 어떤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꼼꼼하게 추적해 나가는 과정이 몸서리쳐질 만큼 처절하다.

일본 연극 역시 그 같은 소설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상의 소재로 한국 연극을 놀라게 한 일본산(産) 명작 2편이 새롭게 업그레이드돼 다시 무대에 오른다

◆ 극단 백수광부의 ‘물고기의 축제’(24일부터 6월17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룽구지소극장·02-744-7304) = 재일동포 극작가 유미리씨는 이 작품으로 1993년 일본 최고의 희곡상 기시다(岸田) 희곡상을 최연소 수상했다. 유씨는 이후 1994년과 1995년 일본 최고의 문학상 아쿠타가와(芥川)상에 두차례 후보에 올랐다가 마침내 1997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 일본 최고의 작가반열에 올랐다.

극단 백수광부의 대표 이성열씨가 유씨의 작품을 만나기는 이번이 두번째. 2005년 유씨의 작품 ‘그린벤치’를 현실과 환상의 어름에서 절묘하게 잡아내 그해 서울연극제 우수상, 연출상, 연기상, 신인연기상, 무대예술상을 탄 데 이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약칭 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예술상 연극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그해 연극관련 상을 휩쓸었다.

‘물고기의 축제’는 ‘그린벤치’와 마찬가지로 해체된 가족의 갈등과 화해가 소재다. 이혼한 아버지와 어머니, 두 딸이 12년 만에 한집에 모였다. 좀처럼 모일 것 같지 않던 가족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은 공사장에서 일하던 막내의 죽음이다.

장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잠복해 있던 이들 사이의 갈등이 조금씩 드러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소심하고, 쩨쩨한 성격이 못마땅해 헤어졌고, 여동생은 언니의 옛 애인과 동거중이다. 그러던 중 막내의 일기장을 통해 행복했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는 단서를 찾는다.

이성열씨는 “작가 특유의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끔찍한 원망과 함께 교차된다”며 “자연스러우면서도 부드럽고 애교스러운, 하지만 피를 토하듯 절절한 그 세계를 긴 호흡으로 천천히 탐구했다”고 말했다.

기무라 노리코 번역, 길해연 장성익 임진순 김미자 서진 김현영씨 등 출연.

◆ 극단 라보 C.J.K.의 ‘바다와 양산’(29일부터 6월24일까지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02-744-0300) = 일본 극작가 마쓰다 마사다카(松田正隆)의 이 작품 역시 1996년 기시다 희곡상 수상작으로, 2004년 국내 초연해 2005년 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예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바다와 양산’은 일본의 어느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내와 소설가 남편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가슴아픈 사랑, 삶과 죽음 등의 의미를 묻고 있다. 이 작품을 번안, 연출한 송선호씨는 연극의 기본 틀거리는 그대로 두고 배경을 부산으로 바꾸고, 경상도 사투리를 집어넣어 한국적 정서를 가미했다.

불치병에 걸려 3개월이라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정숙과 소설가이자 고교 교사인 남편 준모, 준모를 연모하는 잡지사 직원 영신, 그리고 정숙 부부가 세들어 사는 집의 순박한 주인 내외가 주인공이다. 이들의 소박한 삶이 인위적인 연출과 격렬한 감정의 폭발 없이 그냥 물 흘러가듯 펼쳐진다. 정숙과 준모, 영신의 삼각 관계 속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이 바늘로 쿡 찌르듯이 다가온다. 또 운동회가 삶의 목표이기도 속인들의 삶도 그리 나쁘게만 보이지 않는다.

초연에 이어 연기파 배우 예수정, 남명렬씨가 주인공 부부로 출연, 결코 가볍지 않은 일상을 파헤쳐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천착해 낸다. 박지일씨가 운동회가 인생 최고의 과제인 주인집 아저씨역을 맡아 특유의 진지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밖에 이정미, 박상운씨 등 출연.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