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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곳에 가만히 있는다고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건 아니다. 사색은 몸이 움직일 때 함께 따라나선다. 루소도 “나는 걸을 때에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변수는 속도다. 너무 빠르면 생각이 달아나고, 지나치게 처지면 생각도 주저앉는다.

도시인들이 속보(速步) 경쟁을 벌인 지는 오래다. 한손으론 휴대전화로 통화하면서 행여 대열에서 밀려날세라 앞다투어 걷는다. 보속은 곧 생활의 속도다. 딱히 급한 약속이 없어도 갈 길을 늦추지 않는다. 여기에 사색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영국의 심리학 교수팀이 세계 32개 도시 보행자들의 걷는 속도를 쟀더니 60피트(약 18m)에 평균 12.49초로 1994년의 13.76초보다 10% 가량 빨라졌다고 한다. 속보에 더욱 가속이 붙은 것이다. 이 정도라면 1분에 120보, 곧 1초에 2보씩 큰걸음으로 성큼성큼 걷는 행진 속도와 비슷하다. 보폭을 평소 수준으로 줄이면 훨씬 잰 발걸음이 된다.

조사대상에서 서울을 빠뜨린 것은 아무래도 실책이다. ‘빨리빨리’ 하면 한국, 그중 서울 아니던가. 한국을 찾은 어느 외국인은 ‘지팡이를 짚고 가는 할머니, 어린애와 손잡고 가는 어머니, 하이힐을 신은 여성조차 내 눈에는 시내버스처럼 빨라 보인다’고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고궁이나 공원 산책로에서도 팔을 위아래로 크게 휘저으며 휙휙 스쳐가는 사람을 예사로 만날 수 있는 곳이 서울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의 2002년 조사로는 한국인 성인이 걷는 평균 속도는 시속 4.8㎞로, 1초에 1.33m 꼴이다. 60피트로 환산하면 13초대이니 기껏해야 32개 도시의 중위권밖에 안된다. 조사의 방법과 시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과는 의외다. 삶의 속도에 치여 마음이 급한 건 한국인만이 아닌 모양이다.

영국 연구팀은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같은 기술진보가 사람들의 조급증을 키웠다고 풀이했다.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도시인들은 걷는 즐거움과 거기에서 오는 사색의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미국의 문화비평가 레베카 솔닛은 현대사회의 기이한 풍경으로 ‘러닝머신에 선 인간’을 꼽는다. ‘걸으며 풍경을 바라보고 추억하고 사색하는 대신 사람들은 시시포스처럼 그저 양발을 번갈아 내디디며 무의미하게 여가를 소비한다.’(‘걷기의 역사’) 러닝머신 아닌 거리의 도시인 모습이라고 어디 다르겠는가.

[[김회평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