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최고 부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 그렇다면 2위는 누구일까.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면 , 이미 최신 정보에서 한발짝 뒤처져있는 셈이다.

멕시코의 최대 통신재벌인 카를로스 슬림 헬루(67) 카르소그룹과 금융그룹 인부르사 회장이 지난 11일 버핏 회장을 제치고 2위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슬림 회장이 531억달러(약 49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부를 손에 쥔 비결은 뭘까. 포브스는 지난달 26일자에서 남미 사업가로는 유일하게 세계 부자 10위에 든 슬림 회장에 대해 “정확한 목표의식과 추진력으로 버핏 회장을 따라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2위 부자로 등극한 남미 최대 재벌 = 포브스의 갑부 순위가 바뀐 것은 최근 두달만에 카르소그룹 주가가 15% 오른데다, 미국에 진출한 자회사 휴대전화 업체가 텔레콤 이탈리아와 합병하면서 슬림 회장의 자산이 40억달러 늘었기 때문. 반면 버핏 회장의 재산은 524억달러로 줄어들면서, 슬림 회장이 560억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게이츠 회장을 바짝 뒤쫓게 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보도했다.

이처럼 순식간에 돈을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슬림 회장이 사실상 멕시코 국민총생산(GNP) 8300억달러의 6.3%를 창출할 정도로 거대 기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다각도 사업을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여기에는 1990년 인수한 통신회사 텔멕스와 휴대전화업체 텔셀로는 물론 타일과 음식점 체인, 타이어에서부터 담배와 건설, 석유, 전기, 자동차 등이 총망라돼있다. 사실상 멕시코에서 그가 만든 물건을 사용하지 않고는 생활하기 힘들 정도. 금융그룹 인부르사는 은행업과 보험, 연금 등 거의 금융의 전분야를 취급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남미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남미 16개국에서 통신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도미니카 공화국의 최대 통신회사 베리손 코미니카를 인수했다. 콜롬비아 케이블TV ‘슈퍼뷰’와 ‘케이블파시피코’, 브라질 전화회사 ‘엠브라텔’도 모두 그의 소유다.

포브스는 1966년 26세에 처음 사업을 시작한지 겨우 40년만에 이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보기 드문 사례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달 13일 기자회견에서 “10년전 매입한 주식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데, 주가가 올랐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민 2세의 성공 원천은 ‘기록’과 ‘뚝심’ = 슬림 회장은 확고한 목표 의식과 자신의 결정을 밀고 나가는 뚝심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인물이다. 이 모든 재능은 1902년 멕시코로 이민온 기독교계 레바논 출신의 아버지 훌리안 슬림에게서 배운 것.

1910년 멕시코 혁명 이후 멕시코 시티에서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번 아버지가 6형제 중 막내인 그에게 매 일요일마다 용돈 5페소를 주면서 꼭 장부를 지참하도록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부터 도넛 하나를 사먹더라도 지출내역을 장부에 기록했고, 이중 5권의 장부는 여전히 그의 집무실에 비치돼 있다.

어린시절부터 탄탄히 닦은 감각을 바탕으로 모은 돈과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산 등 40만달러는 그의 종자돈이 됐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UNAM)에서 공학을 공부한 뒤 1966년부터 이 자금을 이용해 남들이 내팽개쳐둔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1990년 텔멕스 민영화과정에서 이를 거머쥐면서 거부(巨富)의 기반을 확고히 닦았다.

그의 유일한 목표 ‘수익 창출’에 걸맞다면 분야는 중요치 않은 셈이다. 그는 1982년 멕시코 경제위기 당시 대부분 기업인들이 해외로 자금을 반출할 때 오히려 멕시코 기업을 투자하거나, 인수하는 역발상을 보여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그는 “멕시코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므로,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건전한 투자는 결국에는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는 경영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또 그는 아직까지 부패, 부정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거나, 기소된 적이 한번도 없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향후 4년간 100억달러 기부 약속 = 최근 그가 관심을 갖게 된 영역은 기부와 사회사업 분야. 그는 지난달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새로운 일은 라틴 아메리카의 발전과 고용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면서 “1990년대에 내가 자선사업에 단지 1%만 참여했다면, 지금은 20% 정도 되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23년전 설립한 자신의 재단에 18억달러를 기부했고, 앞으로 4년간 건강·교육부문 자선사업에 100억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최근 약속했다.

그러나 1인당 소득 6800달러에 인구 절반이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멕시코에서는 슬림 회장이 더욱 많은 재산을 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독점에 가까운 사업으로 부를 획득한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 그가 올초 “사업가는 산타클로스처럼 기부하는 것보다 기업을 튼튼하게 만들어서 사회에 공헌하며, 가난은 기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압력에 대한 해명 성격이 강하다.

또 최근 카를로스와 마르코 안토니, 패트릭 등 3명의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는 작업을 시작한 것도 멕시코에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보영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