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미국의 대형 미디어그룹 ‘트리뷴’이 82억달러(약 7조6000억원)에 매각됐다. 트리뷴은 유력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등 11개 일간지와 23개 TV 방송국, 메이저리그 구단 ‘시카고 컵스’를 소유한 미디어그룹이다. 159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트리뷴을 손에 넣은 인물은 바로 유대계 폴란드 이민 2세인 부동산 재벌 새뮤얼 젤(66). ABC방송은 3일 이 소식을 전하면서 “스스로 ‘리스크(위험)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부르던 별명에 걸맞은 셈”이라고 보도했다.

◆ 이민 2세에서 부동산업자 이어 언론사주로 등극 = 시카고에서 부동산업으로 출발, 미국 주요 미디어그룹의 사주가 된 젤은 1941년 폴란드에서 독일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한 부모 사이에서 출생한 이민 2세다. 첫 사업을 시작한 것은 미시간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지 2년 뒤인 1968년 대학 사교클럽인 ‘알파 엡실론’ 동기 루버트 루리와 함께 ‘에쿼티 그룹 인베스트먼츠’를 설립하면서. 그는 이후 값싼 부동산을 매입한 뒤 비싸게 되파는 방법을 통해 이 회사를 미국에서 최다의 아파트와 사무실용 부동산을 거느린 회사로 발돋움시켰다. 또 자산투자회사 캐피털 트러스트, 통신·케이블 제조업체 애닉스터 등을 잇따라 매입하면서 부동산뿐 아니라 기업 투자에서도 ‘큰손’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를 통해 2006년 말 현재까지 그가 이룬 개인재산은 총 45억달러로, 그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자 52위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유력한 경쟁자인 두 억만장자 로널드 버클과 엘리 브로드를 이기고 거대 미디어그룹까지 손에 넣은 것. 젤은 총 3억1500만달러를 투자해 매각절차를 마무리한 뒤 지분 40%를 획득, 곧 트리뷴 회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트리뷴도 지난 2일 매각 성명을 통해 “2단계로 마무리될 이번 거래에서 젤은 1단계에 2억5000만달러, 2단계에서 6500만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트리뷴 인수는 저평가 기업을 매입, 가치를 높인 뒤 재매각하는 그의 전형적인 투자방법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AP통신은 분석했다. 그는 종종 스스로도 자신의 투자성향을 ‘그레이브 댄서(grave dancer·남의 불행으로 득을 보는 사람)’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로 위험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젤은 지난해 말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난 매일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을 기다리는 게 힘든 사람”이라면서 “위험 감수(risk-taking)는 내게는 마치 거대한 지그소 퍼즐 게임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 시들지 않는 호기심과 도전의식 = ABC는 이처럼 위험을 즐기는 젤의 투자성향은 놀라울 만한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오토바이로 전 세계를 누비고, 위험천만한 스키를 즐기는 취미에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는 것. 에쿼티 인터내셔널의 자회사인 ‘에쿼티 오피스’의 전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킨케이드는 “스키에 대해 가끔 그를 놀리곤 했다”면서 “그는 진짜로 매우 빠른 속도로 일직선으로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시카고에 위치한 ‘피플스 에너지’의 데시리 로저스도 “여러 가지 면에서 그는 시카고 비즈니스업계의 상징 같은 인물로, 항상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호기심을 갖고 일해왔다”고 말했다.

경영 면에서는 재빠르면서도 통이 큰 스타일로 유명하다. 큰 시각으로 문제를 파악하는 것을 즐기며, 믿을 만한 인물에게 세세한 회사 운영은 맡겨두는 편이다. 또 어찌나 재빠른지 인수 발표 3일 만인 지난 5일 영화·음반업계 거물 데이비드 게펜과 LA타임스를 매각하는 협상을 개시했다는 보도가 벌써부터 속속 나오고 있다. 목표를 향해 곧장 뻗어가는 그의 스타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행보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 트리뷴 인수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젤이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과 미시간대 젤-루리 연구소 등에 오랫동안 재정지원을 해온 데다,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100만달러를 기부할 정도로 지역사업에도 열성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번 인수에는 시카고의 대표적 지역신문인 시카고 트리뷴에 대한 애정도 함께 담겨 있다는 것. 리처드 데일리 시카고 시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샘(젤의 애칭)은 비전을 갖춘 인물로, 투자자로서도 그를 존경하고 있다”면서 “또한 시카고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끊임없이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신보영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