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홍수(오른쪽) 농림부장관이 4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심만수기자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농산물 협상결과를 놓고 협상이 잘된 품목만 집중적으로 알리고 전체적인 협상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특히 한·미 FTA 발효즉시 관세가 없어지는 576개 농산물(가공물 포함)의 구체적인 품목을 밝히지 않고 있어 농산물 시장개방의 충격을 완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5일 농림부가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 제출한 ‘한·미 FTA 농업부문 협상결과 및 대책방향’자료에 따르면 농산물 협상대상 전체품목 1531개(관세 품목번호 기준)가운데 협상결과를 세세하게 공개한 품목은 67개 정도에 불과하다. 정부가 공개한 67개 농산물은 양허대상에서 제외된 쌀과 계절관세가 도입되는 오렌지와 포도, 관세장기철폐 품목인 쇠고기와 돼지고기, 고추, 마늘 등 협상이 비교적 잘된 품목들이다.

그러나 정부는 관세 즉시철폐 품목 576개 농산물을 ‘냉동 오렌지주스, 산동물, 화훼류, 커피, 포도주, 밀, 사료용 옥수수, 채유용 대두, 아몬드’라고만 기재해 어떤 품목들이 해당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관세가 5년 안으로 없어지는 품목도 310개나 되지만 완두콩, 냉동감자, 토마토주스, 오렌지 주스, 위스키, 브랜디, 해조류, 아보카도, 레몬, 자두 등 10개만 공개했다. 배종하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은 “수입량이 많은 민감품목의 협상내용을 먼저 공개했다”며 “관세 즉시철폐 품목은 전체의 37%로 수입금액으로 따지면 16억달러를 조금 넘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세 즉시철폐 품목 수입액 16억달러는 관세가 포함된 상태의 2003~2005년 3개년 평균 금액이어서 관세가 완전히 없어지면 국내에 얼마나 수입될지 예측 불가능한 상태다.

또 개별품목별로 관세가 적게는 10%대에서 많게는 700%대까지 부과되고 있는 현실에서 어떤 품목이 어떤 기간에 걸쳐 얼마 만큼씩 관세가 없어지는지 알길이 없어 농민들의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현재 농림부는 1531개 품목의 협상결과를 놓고 수입량 및 수입액 예상변동 시뮬레이션 작업을 하고 있으나 공개 여부는 불투명하다. 다만 정부는 국회제출자료에서 “관세즉시 철폐품목은 국내 영향이 없거나 이미 수요량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품목”이라고 밝혔다.

한 농림부 관계자는 “협상대상 축산물만 444개 품목인데 일일이 관세철폐 시기를 공개하기가 기술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한·미 FTA 협상의 최대피해자인 농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협상타결직후에 “농수산물의 경우 당초 예상보다 상당수준 피해가 축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3일에는 권오규 부총리가 직접 나서 소득보전직불제와 폐업지원금 지급등 지원대책을 밝혔다. 하지만 FTA 협상내역이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아 피해 대상에 누가 속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지원 대책을 서둘러 발표한 것은 여론을 왜곡시킬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다.

내용을 알려주지도 않은채 FTA 협상결과의 찬성과 반대를 물어보는 ‘눈가리고 아웅하는’식이라는 것이다. 윤석원(산업경제학과) 중앙대 교수는 “농산물 관세 철폐 기간이 길지만 결과적으로 관세가 없어져 농업을 포기하는 농민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교기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