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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의 명문 조지타운대 에드먼드 월시 외교대학원장인 로버트 갈루치 박사는 민주당이 의회권력을 12년만에 장악한 2007년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다시금 주목받을 특급 외교전문가다. 그는 94년 민주당의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북·미간 제네바 합의를 이뤄냈고 80년대 이후 이라크 핵의혹 사찰,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의 분쟁중재, 핵확산 방지체제 등의 핵심책임자였다. 갈루치 원장은 문화일보와의 신년인터뷰에서 지금 “미국 대외정책은 지나치게 이념적이었던 네오콘식 접근에서 전통적 실용주의로 회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북한에는 “협상을 차기정권까지 미루지 말라”고 충고했다. 국무부와 2㎞도 안 떨어진 조지타운 언덕의 대학원장실에서 갈루치 원장과 만났다.

◆6자회담 “북한 차기 미 행정부때까지 협상 미루지 말아야”

―과거 제네바 합의의 설계자로서 지금 6자회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가 10여년전 추진했던 외교적 접근을 못마땅해했다. 2기 행정부 이후 지금에 와서는 그런 상황이 조금 바뀌었을 수 있다. 국무장관(콘돌리자 라이스)은 외교적 해법을 추구하려 할 것이고 이전(콜린 파월 국무장관 당시)과 달리 국방부 등의 엄청난 적대적 (대북정책) 분위기에서도 벗어나 있다. 대통령도 외교적 해법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낙관할 수는 없어도 희망이 있다고 믿을 만한 여러 이유가 있다.”

―최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북핵문제를 부시 대통령의 임기내에 해결할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는데.

“분명한 것은 부시 행정부로서도 가시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차기 대통령선거철인 2008년 11월 전까지 어떤 성공을 보여주고 싶어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가장 현실주의적인 해법은? 당신이 이룬 제네바 합의도 결국 북한이 속였다는 논란을 빚고 있는데.

“북한이 미국을 속였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가스원심분리기를 구입했다는 증거는 매우 확실해 보인다. 북한도 제네바 합의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감추었다. 북한이 속였다면 더 확실하게 검증하고 새로운 투명성을 요구하는 새 협상을 해야 한다. 북한을 신뢰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협상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좋다. 제네바합의가 완벽한 투명성을 제공하지는 못했지만 분명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중단시켰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긴장을 줄여나갈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의 차기 대선을 통해 제2의 빌 클린턴 행정부의 출범을 기다리면서 협상을 서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두가지 얘기를 해주고 싶다. 첫번째는 다음 선거에서 과연 민주당 대통령이 당선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두번째는 지금 부시행정부가 진지하게 협상을 벌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신뢰감을 보여주며 지금 협상에 임하는 것이 좋다.”

◆한·미 시각차 “미국은 북한의 핵물질이 테러조직에 이전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

―북핵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12년전 북한과 협상할 때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우리가 북한과 협정을 맺으며 북한에 대해 너무 유화적인 정책을 사용한다고 우려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나 노무현 대통령 때는 미국이 무력 사용 가능성이나 대북제재에만 열중하고 있다고 걱정한다. 한국사람들은 북한을 더이상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는 반면, 미국은 북한을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 미국인들은 최악의 경우 북한이 핵물질이나 심지어 핵무기를 테러단체에 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럴 경우 테러범들은 미국에 이런 폭탄을 갖고 들어와 미국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갈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사람들은 북한 핵에 대해서 정말로 참을 수가 없다. 북한문제는 미국과 한국의 동맹관계에서 쐐기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이 테러단체에 핵물질을 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북한이 테러단체에 핵물질을 판매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북한이 팔 가능성은 있다. 북한은 수출할 물품이 많지 않은 나라다. 때문에 북한은 다른 나라들이 팔지 않는 매우 정교한 위조 미국달러,불법 마약, 탄도 미사일 부품이나 기술, 그리고 미사일을 판매하고 있다. 북한이 팔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북한의 핵물질 판매 가능성을 걱정해야 한다.”

◆미 대외정책 “중도적 실용주의로 회귀중”

―지금 미국인들의 이라크전에 대한 여론을 보면 30여년전 베트남전 당시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당시처럼 다시 “컴 홈 아메리카(미국이여 집으로 돌아오라)” 분위기로 가는가.

“미국인들이 이라크전에 지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고립주의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인들이 이라크전에 지쳐 있는 것은 이라크내 갈등이 긍정적으로 풀릴 조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곳을 보면 미국인들은 여전히 중동 걸프만의 안보문제, 이스라엘의 미래, 그리고 중국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적 성공, 일본 경제의 회복에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글로벌화된 세계와 함께 갈 준비가 돼 있다.”

―미국 외교정책의 전통적 논란주제인 현실주의대 이상주의 구도로 얘기할 때 현재 부시 행정부는 이상주의고, 민주당은 현실주의라고 볼 수 있나. 그리고 미국의 분위기는 이상주의적 정책에서 현실주의적 접근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그런 측면이 있다. 그렇게 구분하는 것은 너무 단순화하는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다. 부시 행정부내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은 너무 이념적으로 대외정책에 접근했다. 그들이 추진한 대외정책은 (공화당 중도파를 포함한)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것들은 아니었다. 새 의회를 이끌 민주당 지도부들은 확실히 오랜 중도파 현실주의와 비슷하다. 이라크 연구그룹의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리 해밀턴 전 의원, 로렌스 이글버그 전 국방장관 등의 면면을 보면 모두 중도파 현실주의자(Centrist Realist)들이다. 중도적 현실주의는 미국 외교의 중심이었으며 분명히 지금 미국은 이런 기류로 돌아오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임명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이라크 정책은 어떻게 될 것 같나.

“미국은 이라크내 종파간의 내전이 본격화되고 미국의 이익에 매우 적대적인 이라크 정부가 탄생하는 것을 막고 싶어한다. 만약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면 미국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동북아 “한·일은 중국의 지배적 영향력을 공동 억제해야”

―세계대국으로 성장한 중국과 다시 경제가 되살아나면서 부활하고 있는 강국 일본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 같나.

“일본과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긴장관계였다. 일본과 중국은 서로를 위협으로 인식해왔다. 일본은 이 때문에 미국과의 동맹을 매우 중시해왔다. 동북아에서 매우 흥미로운 대목은 역내 변화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다. 한국은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단기적으로 미국과 계속 문제를 빚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남북이 서울의 주도하에 다시 통일된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성장을 감안하면 한국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게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과 일본간의 갈등에서 한국은 어떻게 자신의 역할을 매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우선 한국과 일본이 작은 섬을 둘러싼 영토 논란을 벌여서 서로 큰 덕을 볼 것이 없다. 한·일 양국은 정치·경제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서로 큰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정학적 전략면에서 보자면 한·일 양국이 함께 중국의 동북아 지배를 억제할 것이라는 점을 중국에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3국 모두에 좋을 것이다.”

인터뷰=최형두 워싱턴특파원 choihd@munhwa.com